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이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출간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이 주고받은 내밀한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은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볼턴 회고록은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의 대북 저자세와 재선을 위해선 뭐든지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민낯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볼턴 회고록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볼턴의 이력을 보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볼턴은 북한·베네수엘라 문제 등을 놓고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다 지난해 9월 트위터로 해고 당했다.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감정을 품고 회고록으로 복수를 가한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또 초강경 매파인 볼턴은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없다고 봤다. 그의 입장에선 북한 설득에 주력했던 문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턴이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서 대북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고, 모든 회의를 기록하는 메모광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회고록 내용 전체를 거짓말이나 소설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볼턴 회고록은 출간 전 백악관으로부터 기밀 유출과 관련한 검열 절차를 거쳤다.
백악관은 볼턴과 내용 조율이 잘 안 되자 책 내용 중 415곳에 대해 수정 및 삭제를 요구했다. 한반도 관련 부분만 110곳이 넘는다. 볼턴은 이러한 요구를 대부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볼턴이 없는 일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볼턴의 ‘매파’적 선입관이 팩트 해석에서 오류를 낳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했다.
볼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기밀 유출”이라고 문제삼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볼턴은 지독히 무능하며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판사의 의견을 보라. 기밀 정보(Classified Information)”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선 볼턴 회고록이 트럼프 대통령 재선 가도에 폭탄을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볼턴이 주장한 대목은 미 대선 과정에서 논란거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벌써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게이트’라는 공격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도 상처를 입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조현병적인 생각’이라는 막말을 퍼부였다. 볼턴의 폭로로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 모두 껄끄러워진 것도 한국으로선 부담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세라 샌더스 전 백악관 대변인이 볼턴을 맹비난하는 내용의 회고록을 오는 9월 출간한다고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트위터에 공개된 일부 내용을 보면 샌더스 전 대변인은 “볼턴이 권력에 취해 있었고 자기 뜻대로 안 되자 미국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또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대행이 볼턴에게 “당신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개XX야”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볼턴이 나가자 남은 참모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했다는 일화도 담겼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