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트럼프, 시진핑에 재선 도와달라 간청” 회고록서 폭로

입력 2020-06-19 04:01
지난해 8월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을 방문한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존 볼턴(오른쪽)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올해 미국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pleading with)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곧 출간 예정인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의 요약본 기고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요약본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이 단독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미국 내 중국 비판론자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찬성하듯이 민주당원들 사이에선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놀랍게도 올해 11월 있을 미국 대선으로 화제를 돌린 뒤 시 주석에게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했다(pleading with)”고 볼턴은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농민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중국의 대두와 밀 수입 증대가 이번 대선 결과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시 주석에게 중국이 얼마나 많은 미국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가시게 졸랐다(importuning)고 볼턴은 지적했다.

오사카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무역 협상을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너무나 기쁜 나머지 시 주석에게 “당신은 3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중국 지도자”라고 칭송했다가 몇 분 뒤 “당신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을 바꿨다.

WSJ는 이 기사에 ‘트럼프 중국 정책의 스캔들’이란 제목을 붙였다. 볼턴의 폭로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 반중 정서를 이용하며 반중 이미지를 호소해 왔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는 친중 프레임을 씌우며 공격해 왔다. 그러나 볼턴의 이 같은 폭로가 사실이라면 ‘중국 때리기’에 몰두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은 중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재선을 도모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볼턴은 시 주석도 2018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6년 더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회고록 보도와 관련해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보다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사람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또 트위터를 통해 “미친 존 볼턴의 책은 거짓말과 가짜 스토리들로 이뤄져 있다”며 “전쟁하는 것만 좋아하는, 불만에 가득 찬, 지루한 바보”라고 공격했다.

볼턴 회고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시해온 대북 외교의 성과에 대해서 최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혹평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뉴욕타임스(NYT)는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도중 폼페이오 장관이 자신에게 “그(트럼프 대통령)는 거짓말쟁이(He is so full of shit)”라고 적힌 메모를 전달했다고 볼턴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은 그해 6월 12일 열렸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밖에 없어 그 회담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정상회담 한 달 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외교에 대해 “성공할 확률이 제로(0)”라고 혹평했다고 볼턴은 덧붙였다.

볼턴의 회고록은 오는 23일 발간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회고록이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다며 전날 출판금지 소송을 낸 데 이어 이날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