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2부행 말렸지만… 내 진가는 이제부터”

입력 2020-06-17 04:02
제주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주민규가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의 프로축구 K리그2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감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 시즌 K리그1 울산 현대를 떠나 제주에 합류한 주민규는 6경기 4골의 고감도 골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시작이에요. 이전까지 색을 입혔다면, 지금은 진가를 펼쳐보여야 하는 시기죠.”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의 프로축구 K리그2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주민규(30)의 떡 벌어진 어깨는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바라보이는 바다만큼 넓었다. 183㎝로 스트라이커 치고 크지 않은 키지만, 부모님께 통뼈를 물려받았다는 체구는 다부졌다. 장점인 ‘힘’에 대한 욕심에 전신 서킷 트레이닝을 자주한다는 그는 “늦게 프로에 입문했고, (공격수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규가 스트라이커로 성공시대를 열기 시작한 건 프로 3년차인 25살 시절부터다. 이전까지 그는 사연 많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프로에 지명되지 못해 2013년 커리어를 마감할 뻔 했다. “너무 울어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는 시기. “하나님의 아들로 쓰임 받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통해서였을까. 2부 고양 Hi FC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민규는 간신히 연습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2015년 서울 이랜드 시절은 전환점이었다. 마틴 레니 감독은 “공격수를 하면 이동국 김신욱 같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주민규를 영입해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썼다. 주민규는 잠재된 ‘킬러본능’을 드러낸다. 2015년 40경기 23골 7도움, 이듬해 29경기 14골 3도움. 무명이었던 주민규는 2부리그를 평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017년 상주 상무에선 34경기 17골 6도움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부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했다.

지난해 그는 K리그1 울산 현대의 유니폼을 입었다. 28경기(선발 13경기) 5골 5도움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에도 그에겐 ‘프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득점 2위(19골)를 차지한 주니오의 백업 역할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민규는 “처음 로테이션을 해보니 갑자기 경기에 투입되면 템포를 찾기 힘들었다”며 “일주일 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고 상기했다.

우승 욕심으로 빅 클럽을 선택했지만, 전북 현대에 단 1득점 모자라 우승도 놓쳤다. 시즌 마지막 포항 스틸러스전(1대 4 패)에 교체로 투입된 주민규는 흐름을 바꿔내지 못했다. 그는 “포항전은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였는데, 끝나고선 너무 허탈하고 아팠다”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주민규의 입지는 더 흔들렸다. 울산이 노르웨이 국가대표 비욘존슨을 영입해 주민규는 사실상 3옵션으로 밀렸다. 그런 주민규에게 지난 시즌 강등된 제주는 ‘용병급’ 대우를 보장하며 손을 내밀었다. 다시 2부 팀으로 가는 것에 대해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김도훈 울산 감독도 “주니오의 계약이 끝나가고 널 더 많이 기용하려는데 왜 가느냐”며 붙잡았지만 주민규는 제주를 선택했다. 그는 “제주가 언제까지 2부에 있을 팀이 아니었고, 저도 경기에 더 많이 뛰어야 묻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성남 시절부터 주민규에 관심을 가졌던 남기일 제주 감독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주민규도 남 감독 밑에서 ‘골잡이’로 거듭나고 있다. 주민규는 미드필더 출신답게 2선으로 내려와 볼을 연계하는 플레이를 즐겨했다. 하지만 대전 하나시티즌과의 최근 경기에서 습관처럼 2선을 넘나들다가 박스 안에서 결정지어주는 역할을 강조하는 남 감독의 심기를 건드렸다. 주민규는 “대전전 때 혼난 뒤 감독님 지시대로 인내하고 찬스를 기다리는데, 바로 결과가 나오더라”며 웃었다. 남 감독은 “주민규는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사이드에서 힘을 빼기보다 중앙에서 찬스를 더 잡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겉모습만 보면 투박한 플레이를 펼칠 것 같지만, 주민규는 발기술과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제주에서도 주민규는 경기당 평균 슈팅(4.2개)·유효슈팅(2개) 전체 2위에 올라있다. 6경기 4골로 수원 FC 안병준·대전 안드레(이상 6골)에 이은 3위를 질주 중이다. 득점왕 경쟁에 대해 주민규는 “저희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득점 찬스가 더 많을 것”이라며 “저만 잘하면 20골 넘게 넣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참 열심히 하는’ ‘언제든지 골이 기대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주민규는 올 시즌 제주의 승격을 위해 오늘도 축구화 끈을 단단히 묶는다. “2017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는 주민규. 제주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그의 인생 목표인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까.

제주=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