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겨냥한 북한의 공격적 언사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처럼 정상 실명을 거론하며 욕설을 서슴지 않는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는 않았지만 막말 수위가 임계점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비정상적인 막말은 이미 남한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까지 여성비하적,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북한은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부터 우리 정상에 대한 실명 비난을 자제해 왔다. 그전까지 북한 당국과 매체는 냉전시기 관행에 따라 우리 정상을 ‘역도’ 등으로 멸칭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 파쇼’ ‘문민 괴수’ 등 비난을 받았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2000년 이전에는 ‘역도’로 지칭된 기록이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2004년 김일성 주석 10주기 방북을 불허한 것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으나 모욕적 표현은 쓰지 않았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은 2008년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다. 노동신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그해 4월 “이명박 역도가 지금처럼 북남 선언들과 합의를 짓밟고 외세에 추종하면서 대결의 길로 나간다면 우리도 대응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이명박정부의 대북 정책에 기대를 접은 뒤로 이 전 대통령을 ‘쥐XX’ ‘박쥐’ ‘역적패당’ 등으로 부르며 “죽탕쳐(짓이겨) 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위협했다. 정부를 향해선 ‘괴뢰패당’이라고 했다.
북한의 대남 비난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더욱 험악해졌다. 북한은 박 전 대통령에게 ‘역도’ ‘특등 매국노’ ‘대결 악녀’ 등 노골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심지어 ‘사대에 찌든 XXX’ ‘괴벽한 노처녀’ ‘미친 노파’ 등 여성비하적인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다. 북한 대남 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016년 4월 박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비판하자 “박근혜X이 또다시 우리를 걸고들며 미친개처럼 짖어대고 있다”고 막말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북한의 도를 넘는 비난에 맞불을 놓으며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북한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비방과 중상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매우 이례적으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이라며 육성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북한은 “(박 전 대통령이) 무엄하기 그지없는 특대형 도발악담까지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고 맞받았다. 일부 외신은 북한의 박 전 대통령 비난을 조명하며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발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북한의 대남 비난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로 회귀한 양상이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집권자’ 등으로 호칭하며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에둘러 비판하는 식이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사태 이후 우리 측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쌓여가면서 점점 험악한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평통은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두고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험담했다. ‘삶은 소대가리’가 문 대통령을 직접 비난한 말은 아니었지만 북한 특유의 노골적인 표현 방식이 과도한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이 불붙기도 했다.
특히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대북전단 관련 담화를 낸 이후 문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비난 수위는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11일에도 “평양과 백두산에 두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을 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할 때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고 촛불민심의 덕으로 집권했다니 그래도 이전 당국자와는 좀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꼬았다.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대남 비난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04년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을 당시 노무현정부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며 대응한 것과도 다소 결이 다르다. 때문에 정부가 북한에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조평통 산하 조직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주장에 청와대가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에게도 험악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두고 “기다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깡충깡충 뛰어나오는 꼴불견 역시 신통망통 원숭이를 찍어 닮았다”며 “혈통마저 분명치 않은 잡종이라 하지만 보면 볼수록 오바마가 원숭이의 몸에서 삐져나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외신을 중심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백악관도 격분해 “매우 추악하고 무례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막말 비난에 여러 차례 희생양이 됐다. 김 위원장은 2017년 9월 본인 명의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로 지칭하며 “반드시 불로 다스리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은 북·미 관계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뒤 트럼프 대통령을 주로 ‘미 집권자’로 지칭하며 실명 언급을 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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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