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 ‘바주카포 처방’에도 금융시장은 차갑다

입력 2020-03-17 04:01

한국은행이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전격 인하하며 사상 처음 0%대(0.75%) 금리 시대를 열었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5일(현지시간) 4년 만에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0~0.25%)으로 1.0% 포인트나 내렸다. 또 7000억 달러 규모의 네 번째 양적완화(QE)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처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이에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지난주 익일물 레포(환매조건부 채권) 한도 증액과 0.5% 포인트 금리 인하에 이어 연준이 이번에는 바주카포 수준의 대형 화력을 과시했음에도 시장의 반응은 차디차다.

당장 연준의 조치 직후 개장한 아시아 주식시장은 급락으로 반응했다. 코스피지수는 3.19% 빠져 3거래일 연속 3%대 하락세를 이어갔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일본은행이 6조엔인 ETF(상장지수펀드) 매입 목표액을 2배로 늘리기로 발표했음에도 2.46% 떨어졌다.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3.40% 급락했고,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증시 낙폭도 3~5%를 기록했다. 이어 유럽의 프랑스, 독일, 영국 증시는 장중 6~8%의 폭락장을 연출했다.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개장 직후 9% 이상 폭락하며 또다시 주식 거래가 일시 중지되는 서킷브레이커로 출발하는 등(이상 한국시간 10시30분 현재) 투자심리가 극도로 얼어붙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실탄’을 소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증폭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17~18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당겨 긴급 처방한 게 조급증만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연준의 이번 조치는 작동 불능에 빠진 국채시장과 이에 따른 유동성 불안을 해소함으로써 기업들의 신용경색 위험을 차단하고 은행의 숨통을 터주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단기 유동성을 나타내는 리보(LIBOR)-OIS 가산금리가 급상승하고 사우디아라비아발 석유 증산 선언까지 가세하면서 하이일드 채권 가산금리가 급등했다.

특히 10년 만기 재무부 채권에 연동하는 MBS 가산금리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기업신용 불안이 미국의 가계로 옮아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금융불안 증상은 완화시키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겨 경기 침체를 극복할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의 근본 차이가 있음에도 금융위기와 비슷한 처방을 내리는 것은 실탄만 소진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소비와 투자가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금리 정책만으로는 실물 위기를 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금융위기 당시에는 위기가 부실 은행들의 금융 시스템을 타고 일정 기간 실물로 전이됐다면 이번 사태는 갑작스러운 경제활동 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신용 위기로 금융시장 유동성을 고갈시키고 심지어 가계의 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위기의 전이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단순히 중앙은행이 기계적으로 은행 자금 공급만 원활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비대면 활동과 국경 봉쇄 확대에 따른 공급-수요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전례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 연준의 경우 앞으로도 양적완화 중심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 빠진 기업어음(CP)과 회사채 관련 조치 등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바클레이스은행은 재정정책의 대응 강화 여부가 시장 안정의 1차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할 만큼 재정정책이 더 긴요해졌다. 따라서 신용경색에 빠진 기업도산 위험을 막을 장치 등 근본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교수는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가계에는 현금 지급 방안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할 정도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준은 실직자나 작은 기업체에 직접 도달할 (정책) 수단이 없다”면서 “이번 상황은 다면적인 문제이고 정부나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