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상황이었던 미국과 이란이 군사갈등 대신 신경전·진실게임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미국은 이란에 경제 제재를 확대했고, 이란은 중동 내 미군 철수를 목표로 하며 장기적인 대미 항쟁 의지를 드러냈다. 논란이 된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사고’는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이란의 미사일에 따른 피격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란은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란에 대한 제재 확대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이란에 “살인적 경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제재를 강화하거나 이란과 거래하는 외국기업 및 개인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 예상된다.
회유도 병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제재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지만 나라 경제를 아주 빠르게 바로잡을 수 있다”며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란은 미국에 경고를 이어가면서도 수위를 조절했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이날 성명에서 미군 기지 공격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미국은 뺨 한 대를 맞고 조금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피에 대한 보복은 미군을 중동에서 내쫓는 것”이라며 “(전날 공격은) 미군 축출을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보복 경고를 한 셈이지만, 당장 추가 군사행동에 나서기보다는 역내 반미 여론을 다지면서 장기간 항쟁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여객기 추락사고는 격추론으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앞서 우크라이나국제항공(UIA) 소속 여객기는 이란 테헤란에서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와 동맹국 등에서 다양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증거는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미사일로 인해 격추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의도치 않은 사고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고 희생자 176명이 중 캐나다인은 63명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누군가의 실수일 수 있다”며 “어떤 사람들은 기체 결함이라지만 그건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격추론을 암시했다. 영국 호주 정상도 같은 입장을 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웹사이트에 19초 동영상을 공개하며 격추론에 힘을 실었다. 영상에는 미사일로 추정되는 비행체가 여객기와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담겼다. 이란은 관련 보도들이 “이란을 겨냥한 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권중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