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1호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법안이 30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로써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 청원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공수처가 23년 만에 만들어지게 됐다. 이번 입법으로 문재인정부의 검찰 개혁이 한 고비를 넘기면서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국회는 한국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마련한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민주당 백혜련 의원안을 4+1 협의체에서 수정해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안이다. 재석 177석 중 찬성 160, 반대 14, 기권 3으로 통과됐다. 민주당에서는 공수처 설치에 부정적이던 금태섭 의원만 기권표를 던졌다.
4+1 공조체제의 막판 변수로 부상했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의 수정안은 부결됐다. 한국당 의원들은 표결에 앞서 국회의장석 주변을 에워싸고 “공수처는 문재인정부 범죄은폐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 표결 방식을 놓고 무기명 투표를 제안했으나 이마저 부결되자 표결 전 본회의장을 떠났다.
법안 통과에 따라 이르면 내년 7월 공수처가 설치될 전망이다. 공수처에 소속된 검사 25명과 수사관 40명이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수수 등 부패 범죄는 물론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 범죄 전반을 수사하고 기소할 권한을 갖게 된다. 대상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및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판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 7000여명에 달한다.
문 대통령이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청와대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패스트트랙에 해당 법안을 올리고 4+1 공조를 통해 법안 처리에 총력을 다한 민주당도 고무된 모습이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에 함께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까지 통과시켜 검찰 개혁의 제도적 기반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의 수사재량권을 늘리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내년 초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설치법은 통과됐지만 한국당과 검찰의 반발이 거세 향후 설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한국당은 일방적 법안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예산안과 선거법에 이은 세 번째 날치기 처리에 의원 모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며 “사퇴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지도부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다른 수사기관에서 같은 사건에 대한 중복수사 발생 시 해당 기관에 요청해 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수처법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지며 여야 간, 또 정권과 검찰 간 대립이 격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나래 박재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