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줄잇는 反유대 범죄… 트럼프 거친 입·손놓은 州정부 책임론

입력 2019-12-31 04:04
흉기를 휘둘러 유대인 5명을 다치게 한 용의자 그래프턴 토머스가 29일(현지시간) 뉴욕주 라마포시에서 경찰에 체포돼 인계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뉴욕주에서 28일(현지시간) 또다시 유대인들을 겨냥한 공격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10시쯤 뉴욕시 인근 몬시에 있는 랍비(유대교 율법학자) 차임 로텐버그의 집에 한 남성이 침입해 흉기를 휘둘러 5명이 다쳤다. 피해자들은 로텐버그의 집에서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의 일곱 번째 밤을 축하하다가 공격을 받았다. 피해자 중 2명은 중태다. 이 지역은 유대인이 주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인 그래프턴 토머스(37)는 범행 직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으나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붙잡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번 공격을 ‘국내 테러’로 규정하면서 “우리가 보는 이런 공격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최근 미국 내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뉴욕과 뉴저지에서 반유대주의 범죄가 자주 일어나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뉴저지주의 저지시티에서 용의자 2명이 유대교 율법으로 만든 음식을 파는 슈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이들 2명과 민간인 3명, 경찰관 1명 등 모두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화이트 세틀먼트에서 예배 중인 교회에 침입한 용의자가 신도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후 무장한 안전요원(왼쪽 상단)이 권총을 겨눠 용의자를 향해 총을 쏘는 순간의 모습. AP연합뉴스

NYT는 2018년 뉴욕에서 반유대주의 범죄가 21% 증가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반(反)명예훼손 연맹’에 따르면 2018년 미국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범죄는 1879건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1000건 이상이 유대인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행위 등을 포함한 괴롭힘 유형의 범죄였다.

올해 발생한 반유대주의 범죄 숫자도 2018년 수준이거나 이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 경찰은 인종·민족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을 전담하는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모두 뭉쳐 사악한 반유대주의 재앙과 맞서 싸워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책임의 불길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빌 더블라시오 뉴욕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증오의 기운이 미국에서 퍼지고 있으며, 이 증오의 많은 부분이 워싱턴에서 발산되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트럼프는 이 나라에 분노와 분열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인 단체들은 “주지사와 시장은 반유대주의에 대해 우려만 표시하고 폭력행위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지방정부에도 화살을 돌렸다. 전직 뉴욕주의원 도브 히킨드는 폭스방송에 출연해 “더블라시오 뉴욕시장은 반유대주의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 뒤 집에 가서 다음 범죄를 기다린다”면서 “주지사와 시장이 반유대주의 범죄를 막기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는가”라며 지방정부를 공격했다.

한편 텍사스주 화이트 세틀먼트의 한 교회에서는 29일 예배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해 3명이 숨졌다. CNN방송은 용의자의 총격으로 교인 2명이 숨졌고 용의자는 총기로 무장한 교회 자원봉사 안전요원들에 의해 사살됐다고 전했다. CNN은 “총격 사건은 6초간 발생했는데 그 장면이 예배를 생중계하던 교회 방송을 통해 전파됐다”고 보도했다. 텍사스주는 2017년 교회를 대상으로 한 총기난사로 26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후 지난 9월 법을 개정해 교회 내에서 총기 소지를 허용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