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2020년 상황도 그리 녹록지는 않다. 이미 시작된 자유민주주의 위기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의 자유와 대의제의 민주주의를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는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와의 경제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5년 내에 권위주의 국가의 GDP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다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를 의식한 대중 영합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민족주의 부상과 연계되어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영국과 미국에서 국가 민족주의에 기반한 브렉시트와 ‘미국 우선주의’가 추구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3년간 유엔 연설에서 모든 국가는 주권에 기반해 자국의 이해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개별 국가의 주권을 일부 제한해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 설립된 유엔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유엔을 해체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더불어 트럼프는 “난 미국의 대통령이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면서 더 이상 안보와 경제 공공재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천명한다.
이 같은 상황은 미·중 갈등의 패권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WTO 가입, 미국 시장 개방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했으나 중국이 이를 악용해 권위주의에 기반한 중상주의로 미국을 착취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중국 때리기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지지를 받는다. 2020년 재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전방위적 대중 공세는 심화될 것이다.
동북아 정세는 세계 차원의 질서 변화에 따라 더욱 요동칠 것이다. 냉전시기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단순 구도는 자유민주주의의 쇠퇴와 민족주의의 발흥으로 훨씬 복잡한 고차원의 이합집산이 될 것이다. 2020년 트럼프의 한국, 일본 등에 대한 책임과 비용 증대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는 이 틈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역내 세력 강화에 나설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여 전례 없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러시아 달래기로 외교 카드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로 강대국 정치의 각축장인 한반도는 북한의 이탈이 더해져 2020년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중국은 북한을 자산화해 미국에 대응할 것이다. 이 경우 전통적 미국은 한·일 협력을 강화해 대처할 것이나 트럼프의 미국은 자국의 단기적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남북이 협력해 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중심의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되면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순진한 발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악의 조합은 미국이 북한과 불완전 비핵화에 합의해 북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상태에서 대한국 방위 공약은 조건에 기초하지 않은 전작권 전환과 분담금 문제로 약화되고, 한국은 일본과 계속 갈등하며 남북 관계는 여전히 답보되고 이 공간을 활용한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 압박이 강화되는 것이다. 한국은 2019년에 이미 이러한 상황을 일부 경험했다.
불확실성을 내포한 변화의 시기에 대처하는 방안은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다. 2020년 한국은 최우선적으로 일본과 갈등을 봉합하고, 트럼프의 미국을 잡아둬야 한다. 이를 토대로 중국과 정교한 밀당을 시도하며,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침해는 강력히 경고하되 20년간 약속만 반복한 러시아와의 프로젝트도 이행해야 한다. 북한에는 일방적 구애를 멈추고 때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가장 중요한 건 민족주의 감성에 호소하거나 국내 선거에 활용하는 정책의 지양이다. 선택지를 막아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