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도심의 가르니에극장(파리오페라극장의 별칭) 앞에 24일(현지시간) 오후 가설 무대가 만들어졌다. 하얀 튀튀(발레 의상)를 입고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들이 무대에 올라 발레 ‘백조의 호수’ 한 장면을 공연했다. 이들은 가르니에극장이 전용 극장인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 소속 발레리나들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발레리나들이 가설 무대에서 춤춘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가설 무대에는 ‘파리오페라극장은 파업 중’ ‘문화의 위기’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파리오페라발레는 지난 17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예정됐던 ‘레이몬다’와 ‘르 파크’ 공연이 일부 취소됐다.
마크롱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제도 개혁은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체계를 단일 연금으로 전환하고, 수급액 산정 시 최고 급여 기간의 평균을 내는 방식 대신 포인트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덜 내고 더 받는 현재의 연금체제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
파리오페라발레와 리옹오페라발레 등 국립 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은 그동안 ‘신체 혹사 직업군’으로 분류돼 42세 은퇴 이후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2019년 현재 기준으로 은퇴 이후엔 최소 1067유로(약 138만원)의 연금을 받으며 무용수 이외의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의 개혁안에 따르면 다른 직업군들과 마찬가지로 퇴직 연령인 62세까지 춤을 춰야 한다. 파리오페라발레 소속으로 노조 대표인 무용수 알렉스 카르니아토(41)는 “단일 연금제는 업무 특성상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는 발레 무용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서 예술가는 소설가나 화가, 작곡가 등 창작 예술가와 배우, 무용수 등 실연 예술가로 나뉘어 사회보장 제도가 결정된다. 일반 임금노동자가 22%의 세금을 내는데 비해 프리랜서가 대부분인 두 분야 예술가들은 16%만 낸다. 정규 단원이 아닌 실연 예술가들은 309일간 507시간 넘는 공연과 연습 시간을 인정받으면 ‘앵테르미탕’이라는 실업급여를 받는다. 연간 약 11만명의 예술가가 앵테르미탕을 받는다.
극장 소속 발레단이나 오케스트라의 정규 단원은 매달 월급을 받으며 은퇴 이후 연금을 받기 때문에 실연 예술가들 중 재정적으로 안정된 편이다. 한국의 시·도립 무용단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19개 국립안무센터(CCN)는 단원들과 시즌 계약제를 맺는다. 예술감독이 바뀌면 단원도 모두 바뀐다.
파리오페라발레 무용수들은 “나이 들어서도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면 가수와 무용수들이 체력을 아끼기 위해 매 공연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42세 정년은 우리가 무대에서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보여주는 한계”라고 주장했다.
파리오페라발레의 파업에 대해 프랑크 리스터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연금 제도는 하나의 보편적인 제도로서 파리오페라발레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면서도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안에서 군인·소방관·경찰관·교도관 등 안보·치안 관련 특수 공무원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기 은퇴하더라도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파리오페라발레 무용수 역시 특수성이 감안될 가능성이 크다고 프랑스 언론은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