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18세기에 저술한 ‘인구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식량 증가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연 그대로라면 과잉인구로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없다.” 21세기에도 맬서스의 이론이 유효할지에는 논란이 있다. 세계적인 저출산 추세로 더 이상 인구론이 유효하지 않다는 반박이 나온다. 한국 상황만 본다면 수긍할 만하다. 다만 시야를 지구 전체로 넓히면 저출산 우려는 ‘과잉인구’의 위협 앞에 무력하다.
27일 유엔 인구국(UNPD)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77억1347만명인 세계 인구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2050년이면 97억3503만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불과 100년 전인 1950년 세계 인구가 25억명에 조금 못 미쳤던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 증가세다.
인구 증가는 식량 소비의 급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식량농업기구(FAO) 농업 전망’ 2019년판을 보면 2028년까지 농축산물 생산량은 15% 증가한다. 향후 10년간 인구가 8억4000만명 정도 늘어난다는 전제 아래 추출한 숫자다. 하지만 농축산물 생산량 성장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붙이지 못했다. 제한된 사육 면적과 질병으로 한계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축산물이 최대 변수다.
유전자 조작(GM) 대신 ‘대체육’
인류의 육식량은 어마어마하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인당 연평균 육류 소비량은 34.7㎏이다. 77억명이 매년 중국 광둥성에서 사육하는 덩치 작은 돼지 성체의 1마리 몸무게와 비슷한 수준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다만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북미 지역에선 1인당 연평균 95.3㎏을 소비하는 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7.0㎏에 그친다.
이 지표는 앞으로 급격하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인구가 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주식 중 하나인 돼지고기 소비량이 급증할 전망이다. OECD는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가 2027년까지 45%(2017년 대비) 늘어난다고 예측한다.
그만큼 생산이 뒷받침해준다면 좋겠지만 질병이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다. 치사율 100%에 가까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FAO는 중국의 올해와 내년 돼지 생산량이 각각 전년 대비 6.7%, 7.7% 감소한다고 관측한다. 문제는 이 숫자가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실제로 돼지가 ASF 때문에 얼마나 죽었는지 가늠할 만한 지표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1억~2억 마리가 ASF로 폐사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영화 ‘옥자’에 등장하는 ‘슈퍼돼지’ 개발 필요성에 힘이 실린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슈퍼돼지 연구는 한국과 중국의 관심이 높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가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이미 슈퍼돼지를 개발했다. 돼지의 근육 성장 저하를 막는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제거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다만 슈퍼돼지를 비롯한 유전자 조작(GM·Genetically Modified) 농축산물은 소비자 거부감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각국 환경단체들은 ‘GM 상용화’를 결사반대한다.
인류가 한꺼번에 채식주의자로 돌아서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가짜 고기’로도 불리는 ‘대체육’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비욘드 미트’에 주목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테니스 스타인 세리나 윌리엄스 등이 투자한 푸드테크 기업 ‘비욘드 미트’는 대체육 산업의 선두주자다. 지난 5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이 기업의 시장 가치는 60억 달러에 이른다. 비욘드 미트는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의 식감과 맛을 재현한다. 콩과 녹두 등으로 만든 햄버거 패티는 채식주의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시장을 파고든다.
비욘드 미트의 길을 따르는 후발주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 2위인 임파서블 푸드는 7억5000만 달러가량의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커질 거라는 기대감이 기술개발과 투자를 부르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유로모니터는 2013년 137억3000만 달러(약 15조9680억원)였던 대체육 시장은 지난해 186억9000만 달러(약 21조7402억원)까지 커졌다고 분석했다. 5년 만에 시장 규모가 36.1%나 커진 것이다. 2030년이면 100조원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대체육의 최대 장점은 소비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고기를 대체할 재료는 화학물질이 아닌 식물이다. 대두, 콩, 씨앗 기름, 밀, 호밀, 보리, 곰팡이가 주요 원료다. 고기에 포함된 영양분도 재현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고기에 포함된 필수 아미노산을 100%로 놓았을 때 같은 무게 기준으로 대두에서 추출한 단백질은 95%, 땅콩은 89% 함량을 구현할 수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 4일 ‘식품산업 활력 제고 대책’을 내놓고 대체 단백질 기술개발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도 시장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동원F&B가 수입하는 비욘드 미트의 햄버거 패티는 벌써 시장에 안착했다. 국내 식품기업 더플랜이트는 자체 개발한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마요네즈’를 판매 중이다. 보통 마요네즈 1㎏를 생산할 때 계란 4.28개가 쓰이는 데, 이 마요네즈는 계란이 필요 없을뿐더러 물 사용랑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도 적다.
한계는 있다. 전문가들은 ‘맛’을 지목한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고기를 100% 대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양창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은 “시중 제품을 평가해봤지만 아직 식감과 풍미(씹을 때의 향기)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