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빛낸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조건에 굴하지 않는 삶” [인터뷰]

입력 2019-12-24 21:00
2019년 눈부신 활약을 펼친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그는 “상업영화라면 재미있어야 한다. 관객에게 1만2000원 티켓값을 지불하고 볼 만하다는 확신을 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올해 최고 깜짝 흥행의 주인공은 ‘엑시트’였다. 당초 약체로 평가받았던 영화는 배우들의 호연과 속도감 있는 연출에 힘입어 942만 관객을 동원했다. ‘사바하’도 괄목할 만하다. 탄탄하게 직조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국형 오컬트물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난 18일 개봉한 ‘시동’은 연말 극장가에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이 올해 이룩한 성과들이다. 과거 류승완 감독의 영화만 제작하던 회사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장르적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여러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우직하게 그 중심을 지킨 이는 바로 강혜정(49) 대표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난 16일 열린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강 대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인상적인 대목은 남편인 류 감독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제가 다운돼 있을 때 ‘아이 셋 키우는 게 유세냐. 더 잘해야지’라며 저를 견인해준 나의 혹독한 스승이자 파트너, 그리고 제 영화의 가장 까다로운 감독이 되어준 류승완 감독에게 감사드립니다.”

외유내강이 올해 선보인 영화 ‘엑시트’ ‘사바하’ ‘시동’(위 사진부터)의 극 중 장면들. 외유내강 제공

올해를 빛낸 영화인, 강 대표를 최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그는 “여성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상이라 더욱 감개무량하다”고 화답했다. 그는 “올해 내놓은 작품들은 신기하게도 원하는 배우들을 다 캐스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큰 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겸손해했다.

올해는 유난히 신인감독들과의 작업이 잦았다. 변화의 계기는 ‘군함도’(2017)였다. 제작비 220억원을 투입한 영화가 뜻하지 않은 역사왜곡 논란과 스크린 독과점 비판에 좌초되면서 류 감독 차기작 선정 기간이 길어졌고, 그 공백기 동안 여러 시도를 해보게 된 것이다. 강 대표는 “당시엔 힘들었지만 엄청난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늘 잘 되길 바라지만 인생이 어떻게 그러겠어요. 왜 실패했는지 고민하고 스스로 복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군함도’가 승승장구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돌아보면 아찔하기도 해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은 이해하나, 긴 시간이 지난 뒤에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재평가 받을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윤성호 기자

강 대표가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재미’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가 담겼어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만큼 가성비 있는 매체가 또 없죠. 2시간을 투자해서 온종일 그 영화에 대해 떠들 수 있잖아요. 대중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객에게 재미를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일합니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꽤나 고단하다. 강 대표는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여자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려보라’고 얘기해준다. 조건에 굴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게 훨씬 재미있다”면서 “내 일이 돈벌이 이상의 어떤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며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년 계획도 이미 빼곡하다.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황정민 주연의 ‘인질’과 김윤석 조인성이 합류한 류 감독의 차기작 ‘모가디슈’를 준비 중이다. 강 대표는 “대중영화임에도 좀 더 가치 있고,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꾸준히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올해만 같아라 싶다”며 활짝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