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기된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과 관련한 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ISD) 사건에서 한국 정부의 패소가 확정됐다. 영국 고등법원이 “이란 다야니 가문의 ISD에 대한 유엔 국제중재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한국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정부는 다야니 가문에 73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 제기됐던 ISD의 위협이 현실화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우일렉트로닉스의 ISD는 시작일 뿐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건 소송 금액이 5조원에 이르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ISD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조 단위 ISD 판결도 남아 있다.
현재 ISD 사건에 대해선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이 사안 별로 전담 조직을 꾸려 대응하고 있다. 전담 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노하우도 축적하기 어렵다. 소송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지 감시 감독할 통로도 갖춰져 있지 않다. 법무부에 부처들의 ISD 소송을 총괄하고 감독하는 과를 신설하는 등 범정부 대응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ISD를 악(惡)으로만 여길 건 아니다. 한국 기업이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등으로 진출할 때 투자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ISD는 큰 도움이 된다. ISD는 기본적으로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ISD를 계기로 국제 기준이나 국제법에 어긋나는 정부 정책이나 행정 집행을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ISD는 국제무역에 나선 자본주의 국가라면 최소한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는 정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ISD는 각국 정부의 반(反)시장적 정책에 제동을 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관(官)’의 힘이 센 한국에서는 당연히 여기는 행정 집행이라도 국제 기준으로는 규정 위반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미 맺은 투자협정이나 FTA의 ISD 조항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론스타 사례처럼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까지 제소가 가능토록 한 조항은 없애야 하는 게 맞는다. 필요하다면 유럽연합 등이 ISD를 대신할 기구로 추진 중인 상설투자법원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
[사설] ISD 범정부 대응체계 구축하고 독소조항 개선해야
입력 2019-12-24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