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 사회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사기 시대(삿 17:6)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심한 국론 분열, 초갈등을 겪었다. 영권(靈權)을 갖고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교회마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흐름을 타개하기 위해 백석대 총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백석 총회장을 맡은 장종현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가 살기 위해 성경의 본질, 생명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교단과 신학교에서 대대적 갱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장 총회장을 23일 만나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과 나아갈 방향성을 들어봤다.
만난사람=정진영 종교국장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1년 한국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
“국가와 정의에 대해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이견을 조율해야 했다. 무엇보다 국가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을 우선시해야 했다. 국가가 있어야 개인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데, 자기들의 생각만이 ‘정의’라고 외친다. 그러다 보니 정죄하는 마음과 갈등만 팽배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나가 됐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지녔다. 분명한 사실은 갈등과 분열이 성장을 저해하고, 발전으로 나아가는 길마저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인 한국교회가 나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의 복음을 나눠야 한다.”
-사회 갈등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예장백석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 심화되면서 총회 대의원들도 마음에 상처가 생겼고 급기야 내게 수습을 요청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해결에 나섰다. 이제 4개월째 들어서는데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도 문제 해결은 성경을 기준으로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것이다. 그것이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인 ‘개혁주의생명신학’의 길이다.”
장 총회장이 언급한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신학의 사변화(思辨化)를 막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영감으로 기록된 완전한 계시이자 복음인 성경을 생명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단순히 신학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경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금권선거 차단을 위해 획기적인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금권선거 논란과 무관치 않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영적 지도자를 뽑는데 돈이 오간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이런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교단을 위해 헌신하실 분을 찾아내 추대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부총회장 추천 제도’다. 현직 총회장과 교단 원로, 그리고 총대들의 존경을 받는 중진 목회자들이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추천하고 총대들의 추인을 받도록 했다. 지도력과 역량을 갖춘 분들이 선거비용을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대의민주주의는 살려두되, 총회를 위해 헌신할 영적 지도자를 합의로 추천하는 제도다. 선거제도가 잘 정착되면 타 교단과 연합기관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교회 갈등이 소송으로 번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관인 교회는 모든 문제를 성경에 근거해 풀어야 한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다. 물론 진리를 훼손하는 이단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다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성경과 교회법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다. 사회법으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은 ‘나만 옳다. 내가 꼭 이기겠다’라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교회법의 권위를 무시하고 책벌과 치리를 피해 세상법을 의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장백석은 교회법이 사회법보다 우위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총회 법과 질서를 확립할 것이다.”
-사회법 소송이 지닌 영적 폐해는 무엇인가.
“소송은 한 번 시작되면 쉽게 끝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공동체는 상처를 입고 분열한다. 싸워 이겨도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그래서 사회법으로 가지 않게 하려고 ‘화해와 조정’ ‘헌법 소원’과 같은 제도를 보강했다. 재판 목적은 징계가 아니라 회복이다. 그래서 20일간 조정 기간을 두고 화해를 권고하도록 했다. 특별재심을 신청해 기각된 사람만 헌법 소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3심제 이후의 장치도 보완했다.”
-한국 사회가 지역 세대 이념 남녀 남북에 따른 갈등으로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당사자는 모두 자기 생각이 옳고 정의롭다고 믿는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 생각과 다르면 적폐세력, 가짜뉴스 유포자로 몰아간다. 내 입장에서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된 정의가 아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공동체에 가장 유익한 것을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정의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사랑, 즉 자기희생과 봉사가 전제돼야 한다. 사랑이 전제된 정의를 주장할 때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분열을 거듭하고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 분열의 이면에는 돈과 명예, 자존심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것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손에 움켜쥔 것을 내려놓지 않는다. 모두 공멸할 수 있는데도 전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3개로 갈라진 보수연합기관은 하루빨리 하나가 돼야 한다. 분열된 교회에는 힘이 없다. 다원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지켜내는 것은 연합의 힘이다. 만약 교회가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면 개혁은 주님께서 해주시지 않겠는가.”
-한국교회가 바로 서기 위한 방법은.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바로 서야 한다. 목회자는 그냥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다. 그런데 세상의 지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진 경우가 꽤 많다.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단지 교회가 부패하고 무능력하다는 데 있지 않다. 세상과도 너무 닮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 권력자는 힘을 사용해 세상을 지배한다. 하지만 교회는 목회자들이 영권으로 성도들을 섬겨야 한다. 영적인 지도자는 영적인 일을 분별해야 한다. 목사는 영적인 일을 감당할 때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해야 한다. 교회 개혁은 목회자가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초갈등사회의 해법은.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다는 깨끗한 물만 골라 받지 않는다. 모든 것을 품는다. 갈등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사랑과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할 것인가.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먼저 죄를 고백하고 낮아지고 겸손할 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나만 옳은 것이 아니다. 남도 옳다. 나만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상대도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대한다면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나와 달라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갈등을 넘어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포용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교단의 새해 계획은.
“모든 총회원이 영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목회자 영성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다음 달 6일 신년하례회를 마친 후, 천안 백석대에 1700여명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2박3일간 뜨겁게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새해를 준비한다. 예장 백석의 신학적 근간인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저녁 부흥회 때 기도와 회개로 심령이 변화되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은 목회자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성령 충만해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할 때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겨야 한다. 그것이 교회 회복의 지름길이자 총회의 새해 비전이다.”
백석대 신학대학원(신대원) 교수 지원자는 10일간 금식기도 후 신앙고백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학문적 소양은 물론 영성의 깊이도 보겠다는 것이다. 신대원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2주간 총장, 교수와 함께 산상부흥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한다. 성경통독과 기도 등 목회 현장이 필요로 하는 영성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그 결과 졸업생 30%가 교회개척에 뛰어든다. 예장백석 교단과 백석대가 단기간 급성장한 비결이 여기에 있다. “설교 준비 때 주석서를 1시간 본다면 성경은 2시간 읽고 기도는 최소 3시간 이상 하면서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장 총회장의 말 속에 2020년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모두 들어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