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둔 중요 전기(轉機)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에 석연찮은 악재가 계속된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김 전 시장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만나가며 건립에 애썼던 산재 모(母)병원은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마감된 직후인 지난해 5월 28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탈락 사실이 발표됐다. 김 전 시장 측은 자유한국당의 울산시장 후보 공천이 발표된 당일 울산경찰청의 울산시청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거대 세력의 ‘낙선 기획’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렇듯 고비마다 김 전 시장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공교롭게 반복되는 점에 착안, 전후 사정의 재구성 작업에 돌입했다. 한편으로는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내부 경쟁자 제거’ 작업도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울산시장에 도전했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과 심규명 변호사는 송 시장의 단독 공천이 결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당헌 위배를 운운하며 크게 반발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단 5일 뒤 중앙당의 뜻에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2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의심하는 대표적인 선거개입 정황은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 지난해 5월로 이어지는 김 전 시장 측의 ‘산재 모병원 좌초’ 과정이다. 우선 검찰이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에게서 확보한 업무수첩 2017년 10월 10일 부분에는 “산재 모병원이 좌초되면 좋다”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인 조사를 통해 이 업무수첩 일부를 열람한 김 전 시장 측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 7개월 전에 ‘좌초’로 미리 의견을 조율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실제 산재 모병원은 선거 직전인 지난해 5월 28일 예타 탈락 사실이 전해지며 백지화됐다. 문제는 불합격이 발표된 시점이다. 김 전 시장 측은 “지난해 5월 28일은 지방선거 후보가 등록되고 나서 주말을 지난 직후의 월요일이었다”고 했다. 지역에서 후보들의 등록이 마감되고, 후보 면면과 공약이 발표되는 등 선거 레이스가 본격화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김 전 시장 측으로서는 울산의 최대 현안이었던 산재 모병원의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게 됐다는 보도자료를 내야 했다.
김 전 시장 측이 결국 좌초된 산재 모병원에 공을 들인 반면, 송 시장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던 혁신형 공공병원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얻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실제 송 시장 측은 지난해 1월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지난해 3월엔 사회정책비서관실 인사를 접촉하며 공공병원에 대한 대선 공약의 진행상황을 꾸준히 청취했다. 특히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 지난해 3월 부분에 이름이 오른 이진석 당시 사회정책비서관은 문재인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밑그림을 그린 인사다. 송 시장 측의 혁신형 공공병원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추후 면제됐다.
검찰은 시점 측면에서 의심할 만한 부분들이 잇따라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시장 측을 향한 ‘하명 수사’ 개시가 김 전 시장 공천이 발표되던 날 이뤄진 점도 공교롭다. 건설업자 김흥태씨의 고발 내용을 중심으로 송 부시장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건넸던 첩보는 지난 2017년 12월 29일 울산경찰청에 하달됐는데, 3개월가량 내사를 거쳐 지난해 3월 16일 울산시청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김 전 시장 측은 “최고권력 핵심부가 선거를 총괄 지휘했다”고 비난했다.
검찰은 김 전 시장 낙선을 위한 움직임 및 송 시장 당선을 위한 기획이 있었는지도 수사 중이다. 송 시장과 경쟁하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이 지난해 4월 보인 행보는 이 대목에서 주목할 만하다. 임 전 최고위원과 심 변호사는 지난해 4월 4일 “민주당을 5번 탈당한 송철호는 후보 자격이 없다”며 반발했다. 민주당 중앙당이 송 시장을 울산시장 단독 후보로 공천한 다음 날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은 송 시장을 가리켜 “당 정체성이 의심되는 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5일 뒤인 지난해 4월 9일 기자회견에선 “중앙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심 변호사는 “지방정권 교체를 바라는 당원들의 뜻이자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가져오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당시 설명했다. 임 전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제 삶의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구 구승은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