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빈손’ 귀국길… 북·미 대화 끝내 불발

입력 2019-12-21 04:04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중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실무접촉이 끝내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비건 대표의 귀국일인 20일까지 별도의 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고, 미 국무부도 “발표할 추가적 방문이나 (북·미 간) 만남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코앞에 두고 ‘깜짝 회담’으로 반전을 꾀하려던 미국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북한 대외용 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6시까지 미국을 향한 어떠한 메시지도 발표하지 않았다. 전날 비건 대표가 중국을 찾아 북·미가 베이징 또는 평양에서 물밑 접촉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비건 대표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것이다.

미 국무부도 지난 19일(현지시간) 비건 대표의 방중 기간 동안 북·미 접촉 가능성을 묻는 국내 언론의 질문에 추가 방문이나 만남은 없다고 답했다. 1박2일 일정으로 방중한 비건 대표는 뤄자오후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한반도 문제 관련 의견을 주고받았다.

북한은 이번에도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6일 “우리는 지금 한국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비건 대표의 공개 만남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한은 미국에 생존권(체제 보장)과 발전권(제재 해제)을 보장하라고 일관되게 요구하는데, 이와 관련한 미국의 확답이 없으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며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가결되면서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핵화 상응조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어려운 정치 상황에 빠지면서 ‘일단 두고 보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한 ‘연말 시한’이 지날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재차 확실하게 미국에 전달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24일 전후로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고 예고한 대로 ‘크리스마스 도발’을 감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판을 깨지 않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건 대표가 북한 인사와 접촉하지 않고 돌아가면 올해 북미 실무협상이 사실상 어려워진 분위기 아닌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고 답했다. 비록 북·미 접촉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대화의 판 자체는 깨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편 미 상원은 본회의 표결을 통해 비건 부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90표, 반대 3표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상원 의석 분포는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이다. 당파를 초월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이로써 비건 대표는 지난해 8월 대북특별대표로 국무부에 합류한 지 1년 4개월여 만에 2인자 자리에 올랐다. 비건 대표는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대북 협상은 직접 챙길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앞으로의 북·미 비핵화 협상에 무게감이 실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손재호 이형민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