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러 제재 이탈 막고, 北엔 손짓… 중국 간 비건 ‘동분서주’

입력 2019-12-20 04:06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겸 부장관 지명자가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뤄자오후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등과 대북 제재 문제 해법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건 대표는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뒤 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은 연일 미국에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상원 의원들까지 나서 제재 강화를 주장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겸 부장관 지명자가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비건 대표는 19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측 인사들과 북한의 고강도 도발 위협에 따른 해법을 논의하고 중국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했으며 20일까지 방중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비건 대표는 애초 한국과 일본만 방문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러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제출이 일정 변경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북 제재 공조 전선에서 중·러가 이탈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급히 일정을 조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비건 대표가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접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상황이어서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공개 접촉을 하거나 직접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비건 대표는 공항에서 북한과 접촉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안하다. 이야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뤄자오후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중·러가 제출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에 대해 “현 국면에서 한반도의 교착 상태를 깨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반대에도 결의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전체적으로 볼 때 한반도 문제는 대화 협상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정치적 해결의 틀 안에 있다”며 “관련국이 자제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도 ‘대북 제재 완화는 워싱턴에도 이익이다’라는 제목의 공동 사설을 통해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데 뜻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문은 “대북 제재 완화는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북한의 자신감을 높이고, 북·미 간 상호 신뢰를 증가시켜 성과를 얻는 데 유리하다”며 “북한이 제재를 감당하지 못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상원의원들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당 크리스 밴 홀런 상원의원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거론하며 “북한이 무엇을 생각하든지 도발에 추가적 경제압박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이 느슨했다고 지적하며 중·러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제출은 “틀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상원은 전날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과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공화당 팻 투미 의원은 “이 법이 특정국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는 게 현실”이라며 중국을 압박했다. 민주당 셰러드 브라운 의원은 “강력한 대북 경제적·외교적 제재 유지에 대한 초당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는 “(이번 입법은) 북한의 행위를 변화시킬 방안”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