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쏜 황태자, 어떤 상대 만나도 날개 확 펼쳐야

입력 2019-12-20 04:04
황인범(오른쪽)이 18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9 동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전반 28분 환상적인 왼발 선취골을 넣은 뒤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황인범(23)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다소 위축됐던 황인범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한 플레이에 물이 올랐다는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팀이나 전술에 구애받지 않고 장점을 일관되게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황인범은 18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막을 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챔피언십에서 한국이 넣은 4골 중 2골을 책임지며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숙적 일본전에서는 그림같은 중거리슛으로 승리를 견인했다.

황인범은 벤투호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감독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정작 팬들에게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월드컵 지역 예선이나 평가전 등에서 불안한 볼 키핑과 패스미스가 잦았다. 밀집수비를 뚫어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들었다. 이번 대회에선 달랐다. 수준 높은 침투패스나 넓은 시야를 보여준 공격 전환, 볼 키핑까지 호평을 받았다.

역할 변화가 컸다. 유럽파가 포함된 대표팀에서 황인범은 공격적인 이재성과 남태희, 수비에 치중한 정우영 사이에서 공수 모두에 기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려 잦은 실수가 나왔다. 반면 동아시안컵에서 황인범은 손준호, 이영재 등 활동량과 압박을 갖춘 미드필더 위에서 공격에 치중할 수 있었다.

상대팀의 약한 전력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기존의 대표팀 멤버가 아닌 23세 이하 선수들을 다수 포함시켰다. 중국도 감독 교체 후 불완전한 전력이었고 홍콩의 수준도 크게 떨어졌다. 비중이 크지 않는 대회다 보니 상대팀들이 밀집수비를 펼치지도 않았다. 황인범의 패스 능력이 빛을 발한 이유다.

장지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19일 “황인범은 상대가 내려섰을 때보다 치열하게 치고받는 경기에서 장점을 더 발휘하는 선수”라고 밝혔다. 소속팀 밴쿠버에서 시즌을 마친 후 충분한 휴식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린 것도 활약의 비결이다.

벤투 감독은 ‘다재다능함’을 황인범의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다재다능은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 국가대표에서의 모습이 그랬다. 이제는 대표팀에서 유럽파 공격진과의 조화에 신경쓰면서 동시에 장점을 살려 자신에게 주어진 포지션을 적극 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황인범은 볼 간수와 패스, 시야가 좋은 선수인데 상대 압박이 심하거나 동료들의 움직임이 둔할 경우 평범한 선수가 된다”며 “주변 상황과 상관 없이 온전히 자신의 플레이를 과감히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