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인공지능(AI)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웬만한 프로기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르며 ‘인류’에 패배했다.
프로기사에서 은퇴한 이세돌(9단)은 1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NHN의 바둑 AI ‘한돌’과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호선(맞바둑)으로 맞붙었던 알파고와의 대결과 달리 AI의 우세를 인정하며 이세돌이 2점을 깐 상태에서 덤 7집 반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1승 4패를 기록하며 AI를 꺾은 유일한 바둑 기사인 이세돌은 초반 3귀를 차지하며 차분하게 출발했다. 포석을 마친 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핸디캡 탓에 불리하게 시작한 백돌의 한돌도 이세돌의 흑돌을 압박했다.
첫 번째 승부처는 우변이었다. 이세돌이 상변에 집을 마련하는 동안 한돌이 우변 흑돌을 둘러싸고 공격에 들어갔다. 흑돌이 죽거나, 살더라도 큰 손해를 본다면 단숨에 형세가 뒤집히는 상황이었다. 이세돌은 흑을 공격하던 백 3점에 78수로 역습을 가했다. 78수는 3년 전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제4국에서 버그(오류)를 유도해 ‘신의 한 수’라고 불렸던 수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한돌은 큰 착각을 일으키며 자멸했다. 자신의 돌이 잡히는 ‘장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격하던 요석 3점을 잃고 말았다.
대국 후 NHN 측은 “이세돌의 78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 반면 이세돌은 “78수는 프로라면 당연히 두는 수이며, 한돌이 고(高)사양의 컴퓨터가 아닌 게 아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세돌은 또 “이긴 뒤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조금 허무하다”며 2국(19일)과 3국(21일)에서 한돌의 ‘분발’을 촉구했다. 호선만을 둬오던 한돌이 2점을 먼저 깔아주는 접바둑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첫판에서 승리한 이세돌은 기본 대국료 1억5000만원과 승리 수당 5000만원 등 상금 2억원을 챙겼다. 제2국에서는 핸디캡 없이 한돌과 호선으로 대결한다.
김영석 선임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