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찰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두 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켄 로치 감독. 이를 끝으로 은퇴하겠다던 그가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아직 못다 한, 그러나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로치 감독이 주목한 건 ‘긱 이코노미’(정규직보다 계약직·프리랜서를 주로 채용하는 경제 현상)다. 쉴 틈 없이 일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 그건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사진)는 주인공 리키(크리스 히친)를 통해 노동자들을 옥죄는 구조적 모순을 들여다본다. 건축회사에 다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실직한 리키는 일용직 막노동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린다. IMF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은 한국 가장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택배기사 일을 새로 시작해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트럭을 사는 것부터 빚이다. 택배회사는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임을 강조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휴가를 쓰려면 자기 돈을 들여 대체 기사를 구해야 하므로 아파도 쉴 수 없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나날이 지쳐간다.
아내 애비(데니 허니우드)의 처지도 비슷하다. 그는 ‘제로아워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것)으로 일하는 간병인인데, 끼니까지 걸러 가며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한다. 그사이 자녀들은 방치되고, 어긋난다.
리키 가족의 이야기 끝에 남는 건 “과연 이 시스템이 지속가능하느냐”는 질문이다. 벼랑 끝의 상황에도 사랑으로 서로를 끌어안는 가족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영화의 원제는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 고객이 부재중일 때 택배기사가 남기는 메시지다. 인간다움이 상실된 이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