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입력 2019-12-18 00:03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존재는 주변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그런데 천사는 왜 예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전했을까. 이는 당시 유대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유대는 로마제국의 속주로서 통치를 받았다. BC 63년 로마 최고 사령관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의 패권 하에 통합됐다. 로마제국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특징인 사회로, 속주의 고유한 문화를 인정했다.

이는 공화정을 마감하고 제정의 기초를 세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구체화한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유대 최고위직을 줬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도 허락했다. 로마가 제패한 뒤 몰수한 유대의 주요 항구 야파(텔아비브)도 유대인에게 반환했다. 속주세도 면제하기로 약속했다. 이 같은 로마제국의 유대 통치 기조는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게도 이어진다.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의 기본방침을 ‘팍스(평화)’로 내걸었다. ‘팍스 로마나’의 시작이다. 아우구스투스는 BC 40년 헤롯 대왕(헤로데스)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해 친 로마 정책을 구사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헤롯 대왕은 유대에 그리스·로마 신을 위한 신전을 세웠고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카이사레아(가이사랴)’라는 항구도 건설했다. 예루살렘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와 사위 아그리파가 기증한 공공 건축물도 건설했다. 자신의 견제 세력이었던 산헤드린에게서 정치 권력을 빼앗아 의회 기능만 유지하게 했고 대제사장도 종교적 기능만 담당하도록 제한했다. 예수 탄생 소식을 접했을 때는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살육하는 잔혹성을 보였다.(마 2:1~18) 70세로 죽은 뒤 그의 왕국은 세 아들(안티파스, 아그리파 1세, 아그리파 2세)에게 분할 통치됐다.

하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민족은 로마화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유대는 헤롯 대왕 사후 내분 상태에 돌입했다. 헤롯 대왕과 후계자에 반대하며 탈로마·독립하자는 분파와 로마 속주로 살며 유대의 존속을 꾀하자는 이들이 맞섰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랜 역사를 통해 고난을 받았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와 아라비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인이 크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대제국들이 침입했다. 아시리아와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그리고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그리스·로마 문명에 의한 팍스로마나를 유일신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로 봤다. 그래서 내부 분열도 심했다. 율법을 중시한 바리새파와 보수 귀족 중심의 사두개파, 극단적 신비주의 에세네파 등 3개 분파가 존재했고 AD 6년 로마의 호적 명령에 반발해 세운 애국적 무장 독립단체인 열심당 등이 난립했다.

예수는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출현했다. 예수는 파당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거부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되길 기대한 제자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 하며 나무랐다.

고대 유대인 군사령관이자 역사학자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예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선생이었다. 그는 수많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그의 곁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였다.… 그의 이름을 본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유대고대사 18권 3장)

2000년 전 상황과 오늘이 비슷하다는 분석이 많다. ‘팍스 아메리카나’, 인본주의 강세,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는 로마제국 시절과 흡사하다. 갈등으로 점철된 오늘의 한국은 유대의 분열상과 겹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적어도 바리새파 에세네파 사두개파 열심당의 노선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