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접견하며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직접 만난 것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해 9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북한이 최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잇따라 벌이는 등 북·미 및 남북 관계가 칼날 위에 서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전 11시부터 35분간 청와대 본관에서 비건 대표를 접견했다”며 “문 대통령은 그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건 대표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과 비건 대표는 모두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은 이달 초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화에서 공유한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두 정상은 한반도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과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서 대화 모멘텀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비건 대표가 직접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대화를 언급한 것은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현 상황에서도 대화와 협상이라는 대원칙은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북한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미 정상의 결단으로 2년 전에 비해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지금은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 등 상황 인식에 대한 공유가 있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협상밖에 없다는 점과 관련한 여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비건 대표 접견 일정은 북한이 미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잇따라 내고 동창리 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용 엔진 실험으로 추정되는 ‘중대 시험’을 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인 와중에 잡혔다. 북한은 스스로 연말까지로 정한 협상 시한을 앞두고 연일 미국을 압박하는 중이다.
오는 23~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도 추진되는데, 이때 문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 비핵화 문제에 일정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비건 대표 접견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현종 안보실 2차장,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 박철민 외교정책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 부대표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가 배석했다.
이후 정 실장이 비건 대표와 별도로 면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면서 북·미 협상 진전을 위해 소통을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