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대처해야
채소·계란·두부·생선 안주로 좋아
음주 중 흡연, 연탄가스 흡입하는 꼴
연말연시 술자리가 잦은 때다. 각종 모임과 회식으로 주 5일 내내 술을 마시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알코올로 인한 건강 폐해를 줄이려면 금주가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피치 못할 술자리라면 똑똑하게 마실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음주 습관과 질병 관련 주목할만한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간은 섭취된 알코올이 분해되는 곳이라 음주로 인한 부담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실제 음주에 의한 알코올성 간 질환자가 20년 사이 무려 8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등 공동 연구팀이 19세 이상의 간 질환 유병률 추이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 1998~2001년(1만4438명)과 2016~2017년(1만1455명) 참여자를 비교한 결과 알코올성 간 질환 유병률이 1998~2001년 3.8%에서 2016~2017년 7%로, 84% 증가했다고 대한간학회 영문학술지에 보고했다.
60대를 빼고는 모든 연령대에서 다 올랐다. 특히 20대는 같은 기간 1.6%에서 6.4%로 4배의 증가 폭을 보였다. 30대는 3.8%에서 7.5%, 40대는 4.2%에서 7.6%, 50대는 5.3%에서 8.6%로 늘었다. 특히 20대 간 질환자의 큰 폭 상승은 젊은층의 술 소비와 고위험 음주의 증가 추세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술을 많이 마시기 보다 자주 마시는 습관이 심장 건강에는 더 안 좋다는 연구결과도 눈에 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은 1주일에 2회 마시는 사람 보다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에 걸릴 위험이 40% 높다는 것이다.
심방세동은 심장에서 윗집에 해당하는 ‘심방’이 박자에 맞춰 뛰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는 질환이다. 심장 기능 저하는 물론 뇌경색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과 가톨릭의대 연구팀이 2009~2017년 국가건강검진 수검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기간 심방세동을 진단받은 약 20만명을 분석한 결과, 음주의 빈도가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가장 큰 위험 요소이며 음주량 보다도 심방세동 발생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최종일 교수는 16일 “알코올은 심장 독성이 있는데, 직접 심장근육을 공격해 계속 술을 마시면 심장근육이 딱딱해지며 이 과정에서 심장근육 안에 있는 전기회로가 끊기거나 이상이 생겨 심방세동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방세동 예방을 위해선 음주량은 물론 횟수를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음주량의 경우도 하루 3잔을 넘기면 심장 독성이 크게 증가한다.
잦고 과한 음주가 갑상샘암이나 위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보고돼 있다.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서울대의대 연구팀이 갑상샘암 수술 환자 2258명과 건강한 대조군(2만2580명)을 비교한 결과 하루 150g(10잔) 이상 알코올을 섭취하면 갑상샘암 위험이 남자 2.2배, 여자는 3.6배 이상 높아지는 걸로 나타났다. 술 종류는 다양하지만 각 한 잔 속에 함유된 순 알코올량은 10~15g 정도로 비슷하다. 서울대의대의 또 다른 연구팀은 1만8800여명을 대상으로 음주와 위암의 상관성을 분석해 주 7회 이상 잦은 음주자와 31년 넘는 장기 음주자의 경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보다 위암 위험이 50%나 높게 나왔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음주는 자기 의지에 따라 충분히 조절 가능한 만큼 현명하게 술을 마시는 법을 터득해 놓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술은 언제나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셔야 한다. 한국인에게 권고되는 적정 음주량은 성인 남자 2잔, 여자 1잔으로 맥주 소주 위스키 등 종류에 무관하다. 술자리 갈 때는 그날 마실 음주량을 미리 정하는 것이 좋다.
과음 후에는 간과 위가 쉴 수 있도록 3일 정도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1주일에 2회 이상 술을 마시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신체 전반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복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비어있는 위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 흡수 속도가 빨라져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상승하고 위 점막이 심한 자극을 받는다.
술은 반드시 식사나 안주를 곁들여 마셔야 한다. 채소, 과일처럼 칼로리 낮은 음식부터 배를 채우고 간 기능을 보완해 주는 고단백 식품(계란, 두부, 생선, 치즈, 우유 등)도 안주로 좋다. 열량 높은 기름진 음식이나 맵고 짠 스낵은 삼가야 한다.
술은 천천히 마셔야 한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오승원 교수는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르나 보통 1시간에 맥주 2잔, 소주 2잔 정도”라면서 “특히 한국인은 서양인 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의 분비량이 적을 뿐 아니라 이 효소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으므로 급하게 마시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술 마실 때 담배는 피우지 말아야 한다. 니코틴 등 담배에 들어있는 여러 유해성분과 발암물질은 알코올에 잘 용해된다. 음주 중 담배를 피우는 것은 거의 연탄가스 중독에 가까운 일산화탄소 중독을 경험하는 꼴이다.
과음한 다음날 해장술은 안 하는 게 좋다. 해장술은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숙취의 고통조차 느낄 수 없게 하고 간과 위를 손상시킨다. 해장술을 찾게 된다면 알코올 중독 2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음주 후 운동과 사우나도 가급적 피한다. 오 교수는 “과음 후에는 심장의 근육이 예민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이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고온에서 땀을 빼는 사우나도 몸에 탈수를 유발해 숙취 해소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