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필리버스터’ 시도, 與 불참… 국회 본회의 무산

입력 2019-11-29 19:10 수정 2019-11-29 19:51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있다. 한국당은 이날 모든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본회의가 열리지 못했고, ‘유치원 3법’과 ‘민식이법’을 비롯한 민생법안 처리도 무산됐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유치원 3법’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안건 약 200개에 대해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29일 벌어졌다. 필리버스터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로, 장시간 연설(무제한 토론)이 주로 사용된다. 이에 반발한 더불어민주당이 불참하면서 이날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다음 달 초 예산안 처리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상정을 앞두고 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다음 달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강경책을 택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불법으로 출발시킨 패스트트랙 폭거의 열차가 대한민국을 절망과 몰락의 낭떠러지로 몰고 있다”며 “불법과 다수의 횡포에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할 것이고, 그 차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다음 달 3일 이후 본회의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 저항의 대장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불법 패스트트랙의 완전한 철회 선언과 친문게이트 국정조사 수용일 것”이라고 했다.

일격을 당한 민주당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날 본회의 개최는 불발됐다. 국회법상 재적의원 5분의 1 참석으로 본회의가 개의되지만, 안건 표결을 위한 본회의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해야 열리는 게 관행이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이 의사일정을 합의해야 본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당초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등 민생법안들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민주당은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한국당 규탄대회를 열고 “민생법안을 볼모로 20대 국회 전체를 식물국회로 만든, 의회 민주주의 파괴 폭거”라고 비난했다. 이해찬 대표는 “제가 30년을 정치 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 본다”며 “우리가 참을만큼 참았다. 더 이상 참지 않고 해내겠다. 나라를 위해서 반드시 정치개혁 사법개혁 선거개혁을 해내겠다”고 외쳤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한국당의 시도는 정치 포기 선언으로 간주한다”며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던 민식이법, 유치원 3법 등을 거론하며 “어떻게 (이런 법안들이)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있나. 어떻게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나. 한국당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민생 폐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정의당도 한국당이 무쟁점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았다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국당이 민생법안을 볼모를 잡았다는 오명을 감내하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택한 것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들의 상정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다. 한국당의 초강경 카드로 인해 다음 달 10일 종료되는 정기국회가 사실상 올스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다음 달 2일에는 내년도 예산안이 자동 상정되고, 3일에는 패스스트랙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서도 한국당은 각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