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권한주되 의회가 내각 구성… 혼합형 체제 논의 필요”

입력 2019-11-30 04:05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문구는 절반쯤만 맞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이 간여하는 인사의 세계는 넓고 깊으며 감찰을 명분으로 휘두르는 권력도 막강하다. 그러나 정책적인 부분을 살피자면 대통령의 힘은 크지 않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거나 예산 동의를 받아야만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임기는 5년이지만 초반엔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고, 후반에는 레임덕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4년 중임 개헌을 하면 어떨까. 강원택(58·사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런 주장을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임기인 4년 동안 대통령은 인기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일 게 불문가지다. 강 교수는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가 대통령제에 있다면서 “혼합형 체제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통령에게 중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되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여 내각을 구성하게 하고, …대통령이 총리 지명이나 법률안 거부권, 의회 해산권 등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강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는 이 같은 주장 외에도 그가 제시하는 한국 정치 처방전이 빼곡하게 실려 있다.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라는 4개 키워드로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를 일별한 작품인데 인상적인 부분이 수두룩하다. 가령 강 교수는 이념적인 형태를 띠는 정당 구도가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정당으로 열린우리당을 꼽는다.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한국적 맥락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등장”했다고 판단해서다.

문제는 정당 정치의 힘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광우병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명박정부는 집권 초기 100일을 허송세월했다. 정부 대응도 형편없었지만 당시 퍼진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가짜 뉴스였다. 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당이 주도한 정치적 집회였다면 그 정당은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집회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대의민주주의를 통한 제도적 논의와 문제 해결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책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교양서이면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려주는 가이드북 성격도 띠고 있다. 출판사 21세기북스가 펴내고 있는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줄임말)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기도 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