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이슈 다 집어삼킨 황교안 단식

입력 2019-11-27 04:02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7일째인 26일 청와대 앞 천막 안에 누워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 농성이 당 안팎의 모든 정치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간 한국당을 뜨겁게 달궜던 보수통합 논의와 쇄신론이 황 대표 단식 이후 자취를 감췄고, 여야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 협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26일 청와대 앞에서 7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황 대표를 찾아가 3분여간 대화를 나눴다. 황 대표가 이달 초 보수통합을 공론화한 이래 두 사람이 만난 건 처음이다. 통합 논의가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유 의원의 방문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통합 이야기는 거론되지 않았다. 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에게 단식을 중단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황 대표가 고맙다고 했다”고 전했다.

보수통합 작업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한국당 내부 기구인 보수대통합추진단(가칭)은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친박근혜계 원유철 의원이 단장에 내정된 일로 한 차례 논란이 빚어진 데다 황 대표의 단식으로 관심이 후순위로 밀렸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도 한국당과 선을 그은 채 창당준비위원회 구성에 돌입하는 등 신당 창당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국당과 변혁 간의 대화는 아직 전무한 상태다. 원 의원은 “패스트트랙에 집중하는 시기라 통합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위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한국당은 극우 성향의 정치 세력과 엮이는 모습이다. 단식 첫날 전광훈 목사가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한 황 대표는 전 목사와 만세 삼창을 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함께 농성했다. 또 태극기 세력으로 불리는 극성 지지자들은 단식 농성장 주변에 판을 벌이고 정제되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 의원이 황 대표를 방문할 때도 이들이 거친 욕설로 항의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김세연 의원의 한국당 해체 주장으로 들끓던 쇄신론도 잠잠해졌다. 당대표가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 터라 쇄신론이 힘을 얻기 어렵게 됐다. 단일대오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개별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가 지도부 흔들기로 비칠 위험이 크다. 간헐적으로 나오던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도 황 대표 단식 이후 뚝 끊겼다.

패스트트랙 협상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줄 것은 내주고 받을 것은 받아오는 게 협상인데, 황 대표가 출구 없는 투쟁에 나선 탓에 결과적으로 협상이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많다. 여야가 협상할 수 있는 기한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연동형 비례대표제)은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은 다음 달 3일 국회 본회의 부의를 앞두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황 대표를 향해 “국회로 돌아와 대화와 타협을 지휘해 달라”고 요청했다.

심우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