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을 크게 바꿔 놓을 3가지 협상이 한 달 내에 벌어진다. 북한이 연말로 시한을 못 박은 북·미 비핵화 협상, 다음 달 말 한·일 정상회담 전에 타결돼야 하는 한·일 수출규제 협상, 미국이 연내 타결하려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그것이다. 모두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연내’라는 시간표에 쫓기고 있다. 각 협상에서 극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한반도의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거친 삼각파도가 몰아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까지로 정했다. 그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협상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결렬 이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수차례 요구했고, 이에 한·미는 이달 중 예정됐던 연합 공중훈련을 전격 연기했다.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협상 복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은 지난 19일 “대북 적대 정책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게 철회되기 전에는 (비핵화를) 논의할 여지도 없다”고 했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26일 “북한은 제재 철회 조치나 확약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까지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북한이 ‘새로운 길’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최근 9·19 군사합의를 파기한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수출규제)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도 한 달 안에 협상 성과를 내야 풀릴 수 있다. 지난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일본 측과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진행키로 했다. 다음 달 말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도 열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까지 수출규제 협상이 타결돼야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의 시발점인 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돼야 수출규제도 철회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양측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일 기업과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1+1+α(알파)’ 안이 주목받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는 오르지 못한 상태다. 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 전범기업 자산매각 집행은 내년 초로 예정돼 있다.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은 역대 가장 어려운 협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9일 3차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은 한국 측 제안에 불만을 표하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다음 달 미국에서 4차 회의가 열릴 예정인데,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원하는 미국과 사실상의 동결을 원하는 한국 사이에 아직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방위비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못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국을 굉장히 거칠게 몰아붙일 것”이라며 “철강·자동차 관세 등 통상 분야의 강한 압박 속에 양국 간 파열음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