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동엽] 2030세대의 기회구조

입력 2019-11-26 04:03

우리 2030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개성이 강하고 글로벌화돼 있으며 다양한 역량과 출중한 창조성을 가진 탁월한 인재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자꾸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의 경우 과거에는 4년에 졸업하는 것이 정상이었고 외국에서는 요즘도 마찬가지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학생들은 대부분 6년 내외를 소요한다. 이들이 특별히 대학생활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들 앞에 펼쳐진 기회구조의 취약성이 핵심 원인이다.

사회문제를 설명할 때 각 구성원의 개인적 경험이나 가치관, 역량 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거시적 맥락인 사회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2030세대의 사회 진출 지체는 구조적 원인이 훨씬 크다. 1960년대와 70년대 고도성장기와 80년대 민주화운동기에는 우리나라가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갓 회복되기 시작하던 때라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도처에 깔려 있어서 웬만한 역량만 갖추면 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했다. 그러나 90년대와 2000년대에 우리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기회구조가 급속히 줄어들어 버렸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기본적 요건은 거의 다 갖춰졌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의 역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사라진 것이다.

대신 제한된 기존 기회를 두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었다. 이 경쟁에서는 아무래도 더 많은 경험과 자원을 가진 기성세대가 사회초년병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사회안전망이 약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후배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물러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아예 사회에 진입할 기회가 없거나 또는 어렵게 진입하더라도 선배들이 위를 막고 있기 때문에 몸으로 때우는 식의 낮은 수준의 직무를 터무니없이 오래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자신의 앞날을 깨달은 젊은 세대는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뚫기 위해 30대가 될 때까지 온갖 준비를 다 하며 사회 진출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70만명이 넘는 거대한 취준생 집단이 탄생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다. 이런 열악한 기회구조를 고려할 때 2030세대에게 나이가 들도록 사회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거나 안전한 공무원 취업에만 매달린다는 식의 비난은 공평하지 않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새로운 기회 창출에는 성장이 필수적이다. 기존 기회를 놓고 기성세대와 경쟁하지 않게 하려면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계속 만드는 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정권을 비롯한 최근 정권들은 효과적 성장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직접 분배를 확대하는 데 주력해 왔는데 지속가능성이 없는 단기 처방일 뿐이다. 지속가능한 기회는 성장 자체에 초점을 맞출 때 생긴다. 정부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지속가능한 기회만 만든다면 무조건 허용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의도적 기회 주기가 필요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성세대와 대기업 등이 젊은 세대에게 기회 주기를 의도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지금의 주류인 50대는 386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80년대 민주화투쟁에서 상대방을 타도하는 데 몰두했으므로 싸움과 경쟁에 강한 반면 상대방을 배려하고 기회를 주는 데는 약하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을 겪다 보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공격적이나 전체 공동체를 생각하는 데는 약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민주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각 집단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는 넘치나 공화는 없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근시안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젊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 K팝의 놀라운 성공에서 알 수 있듯이 기회만 준다면 우리 2030세대는 기성세대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탁월한 성과를 낳을 수 있는 준비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