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대통령 배출해야 된다는 면허라도 받았나”

입력 2019-11-24 18:55 수정 2019-11-25 17:29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이철희(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86세대 용퇴론’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발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386세대가 당대표와 대통령까지도 배출해야 된다는 것부터가 특권의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모든 세대가 당대표와 대통령을 배출한 게 아니지 않느냐”며 “386세대는 그걸 해도 된다는 면허를 받았느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최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현 정치체제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정치 혁신을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 왔다. 특히 여당 내 다수인 386세대와 관련,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인정하자며 용퇴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당대표나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세대인 점을 들어 “우리가 뭘 누렸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이 의원은 24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6월항쟁을 통해 ‘87년 체제’를 만든 것이 386세대의 역사적 기여”라며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87년 체제는 끝났고 동시에 386세대의 소명도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를 이뤄냈고, 민주화로 선출된 대통령도 국민 저항으로 물러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며 “그 정도면 다른 세대가 누리지 못한 영광을 누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386세대의 실패도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2030세대가 지금 헬조선(지옥과 조선의 합성어)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N포 세대(모든 걸 포기하는 세대)가 돼 고통받고 있는 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의 국정 운영 결과”라며 “이에 대해 386세대가 답을 못 내고 있는 건 결국 실패이며 숙제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우리 386세대의 세계관으로는 풀지 못한다”며 “영광은 남기고 숙제는 다음 세대가 하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그는 공유경제, 데이터 경제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386세대의 정치 문법과 세계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언제나 ‘한 번만 더(One more)’를 외치는데 ‘이제 그만(No more)’이나 ‘충분하다(Enough)’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셀프 개혁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며 “그나마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이 정도로 정치 판갈이를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정치작동 방식 안바꾸면 누가와도 마찬가지… 판갈이 해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선 비례대표가 무엇을 하겠느냐’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국회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입증해 온 초선 비례의원이다. 지난해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을 공개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원내수석부대표와 국방위원회 간사 등 원내 주요 직책도 맡았다. 정치토크쇼 ‘썰전’ 등 방송 출연으로 쌓은 인지도를 토대로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15일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작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누가 들어와도 좋은 정치를 하기 어렵다”며 의원 물갈이를 넘어선 ‘정치 판갈이’를 주장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24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치 판갈이의 구체적인 의미는.

“정당 개혁, 국회 개혁, 헌법 개혁(개헌)까지 일련의 정치 혁신을 통해 그야말로 일하는 국회, 국민과 같이 가는 정치가 작동하게끔 하는 것을 판갈이라고 본다. 내년 총선에서 국회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오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 대선까지 2년 동안이 정치를 혁신할 골든타임이다. 이번에 못 바꾸면 한국정치는 영원히 국민 불신을 받을 것이다.”

-본인도 386세대면서, 386한테 물러나라고 하고 있다.

“지금 2030세대가 힘든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이렇게 망가뜨린 뒤 해결도 우리가 하겠다? 이건 안 된다. 우리(386세대)는 에너지도 고갈됐고 상상력도 소진됐으니 너희가 와서 하라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꿈은 버리고, 이제 아버지 행세를 그만하라는 것이 지금 젊은 세대의 요구다.”

-당내에선 386세대가 할 일이 남았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당사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곧 위기의식의 발로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가서 위수령이 아직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랐다. 문재인정부 들어와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없앴다. 도대체 그동안 386세대가 국회에 들어와서 무얼 했나. 국가보안법도 못 없애고, 대체 입법도 못 만들었다. 군부 잔재 청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당과 야당이 계속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쑥 단식을 하는 게 지금의 정치문법이다. 황 대표만 그런 게 아니라 과거에 우리도 그랬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정치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하지 않고 정치인이 반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뭔가 하려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밀어붙이는 운동 방식을 유지하는 것, 그 자체가 반(反)정치다.”

-여당이 된 뒤 민주당의 행보를 평가해 달라.

“탄핵을 거치고 대선 이후 형성된 ‘탄핵연대’를 개혁입법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적폐청산을 하다 어느 순간 전환을 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친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당이 ‘원팀’을 강조하는데 ‘창조적인 원팀’이어야지 ‘침묵하는 원팀’이 돼선 안 된다.”

-내년 총선에 어떤 인물이 들어와야 하나.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로 공천심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여론조사를 해서 인지도 있고 스펙 좋은 사람을 쏟아내는 ‘떳다방 스펙 공천’을 해선 안 된다. 스펙이나 인지도가 아니라 누군가를 충실히 잘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하고,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한다. 82년생 김지영, 95년생 이남자(20대 남성), 우리 옆의 김용균씨, 제2의 진대제, 탈북민과 하재현 중사까지 누군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와서 잘 대표하면 그게 정치가 잘 돌아가는 것이란 얘기다.”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정당으로 쳐들어가서 정치를 점령해라. 정치를 잡아야 세상을 바꿀 힘을 갖게 된다. 눈으로 보면 안다고 생각하지만 386세대는 2030세대 아픔을 잘 모른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겐 공정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단일팀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겐 아니었다. 그게 단적이다. 정치를 외면하고 다른 데서 답을 찾아선 각자도생의 시대밖에 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정치를 안 하면 청년들의 삶은 안 바뀐다.”

김나래 박재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