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다소 거리가 멀 것으로 여겨졌던 유럽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유럽연합(EU)본부가 있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유럽에서도 가장 선제적으로 대기관리정책을 펴는 나라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11월부터 3월까지 시행하는 겨울비상계획(Winter Emergency Scheme)이 대표적이다.
겨울비상계획은 4단계로 구분된다. 첫번째 단계(블루 플래그)는 시민들에게 미세먼지 정보를 제공하고 주의하도록 경계한다. PM 2.5(초미세먼지) 농도가 1㎥당 35~50㎍이거나 PM 10(미세먼지) 농도가 1㎥당 51~70㎍일때 발령된다. 이때 시민들은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등 친환경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도록 권고받는다.
2단계(블루 플러스 플래그)는 1단계 상황이 이틀 동안 지속될 때 시행되며 정부 개입이 이뤄진다. 도심 지역은 자동차 속도가 시속 50㎞(평소 70~90㎞)로, 외곽 고속도로는 시속 90㎞ 이하로 각각 제한되며 나무 난방이 금지된다. 3단계(오렌지 플래그)는 PM 2.5 농도가 1㎥당 51~70㎍이거나 PM 10 농도가 71~100㎍일때 또는 이산화질소 농도가 151~200㎍일때 적용된다. 나무난방이 금지되고 실내 난방온도는 20℃로 제한된다. 4단계(레드 플래그)는 PM 2.5 농도가 1㎥당 71㎍이상이거나 PM 10 농도가 101㎍ 이상일때 또는 이산화질소 농도가 201㎍ 이상일때 발령되는데 모든 자동차 운행이 금지되며 대중교통과 공유자전거 이용이 무료다.
브뤼셀시의 루카스 더뮬러나 기후에너지환경장관 자문관은 13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35년부터는 모든 가솔린, 디젤 차량이 도심에 진입하지 못한다”며 “이에 대비해 전기차 등 친환경차량과 자전거, 걷기 등 ‘굿 무브(good move)’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뮬라나 자문관은 “브뤼셀의 대기관리정책은 크게 교통과 빌딩(난방)으로 나눠 시행한다”며 “빌딩 섹터에서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지원하고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나 신차 구입시 1~2년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차량운행제한 규정을 어기면 350유로(45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브뤼셀시는 경유차를 많이 쓰는 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벌금 부과 후 3개월 내 배기가스 저감장치 장착이나 운전습관 개선시 벌금을 면제해준다. 더뮬라나 자문관은 “미세먼지 시즌제 도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초기에는 부정적이었으나 공기질이 좋아지면서 지금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시즌제를 도입한 나라 중 눈여겨볼 국가는 이탈리아다. 유럽연합 중 환경오염이 심각한 나라 중 하나로 과거 제조업 육성정책을 폈고 마땅한 환경정책은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2017년 미세먼지 시즌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등 환경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핵심도시인 볼로냐가 대표적이다.
16일(현지시간) 볼로냐를 찾았을때 시내 곳곳에는 승용차를 대체하기 위해 친환경 교통 인프라로 자전거 도로가 설치돼 있었다. 에밀리아 로마냐주는 겨울철 대기오염이 극심해 올해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차량 배출가스 최소 기준을 가솔린은 ‘유로2’, 디젤차는 ‘유로4’로 제한한다. 이어 2025년까지 가솔린은 ‘유로3’으로, 디젤차는 ‘유로5’로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450유로(약 58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미세먼지(PM 10) 농도가 50㎍/㎥을 초과할 경우 비상조치가 발령돼 난방 온도를 17~19℃로 낮추고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며 도심 내 교통 통제가 강화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유타주, 중국 베이징 등도 겨울철 미세먼지 시즌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국내 최초로 올해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미세먼지 시즌제’를 시행한다. 미세먼지 시즌제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이 잦은 겨울철부터 이른 봄철까지 평상시보다 강력한 저감대책을 상시 가동해 미세먼지를 집중 관리하는 사전 예방적 특별대책이다.
시즌제 기간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녹색교통지역 출입이 제한되고 행정·공공기관 소유 차량을 대상으로 2부제가 시행된다. 또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대형건물 겨울철 적정 난방온도를 집중 관리한다. 특히 차량 이용을 줄이기 위해 서울 전역의 시영주차장에서는 5등급 차량에 대해 50%, 녹색교통지역 내 시영주차장은 모든 차량에 25%의 주차요금을 더 받는다.
시즌제 효과를 높이기 위한 7대 상시 지원대책도 병행한다. 대표적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고 미세먼지 민감군 이용 시설이 집중된 지역을 ‘미세먼지 집중관리구역’으로 지정해 특별관리한다. 저소득층 ‘친환경보일러’ 설치 지원금도 2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려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브뤼셀·볼로냐=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