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감사한 일 50가지 써보실래요?… 감사는 소통의 첫 단추

입력 2019-11-21 00:01
감사운동을 도입한 동아전기공업주식회사 직원들이 지난달 회사에서 서로에게 감사한 점을 발표하고 있다. 감사나눔신문 제공

“어머니께 감사한 일을 떠올려보고 50가지만 적어 오십시오.”

김용환(60 감사나눔신문 사장) 장로는 지난 15일 인터뷰 날짜를 조율하기 위해 연락한 기자에게 대뜸 숙제를 내줬다. 3일 후 서울 영등포구 감사나눔신문 사무실에서 만난 김 장로는 자신의 감사운동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앞서 숙제 검사부터 했다. 기자는 출생부터 지금까지 삶의 순간순간 느꼈던 어머니를 향한 감사제목들을 읽어 내려갔다. 감사제목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먹먹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 김 장로가 말했다. “오늘의 감사 고백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겁니다.”

감사운동 전문가의 신문 창간

김 장로는 2007년부터 ‘생명을 살리는 감사편지 쓰기 운동’을 펼쳐온 감사운동 전문가다. 기업 군부대 학교 교도소 등을 찾아 ‘감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감사를 바탕으로 소통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감사운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사례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창간한 감사나눔신문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최근 발행한 236호 신문엔 감사운동이 활기찬 병영문화 조성에 톡톡히 역할을 하는 현장, 동료 수용자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편지를 보내온 사연, 감사가 생활화돼 달라진 일터와 가정의 모습 등이 수록됐다. 그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도록 하는 게 감사나눔신문의 존재 목적”이라며 웃었다.

감사운동을 통해 뿌려진 씨앗들은 전국 각지의 기관과 단체, 공동체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육군 8군단 소속 부대원들은 개인수첩인 ‘소나기(소중한 나의 병영일기)’에 매일 5가지 감사제목을 적는다. 김 장로가 보여준 ‘소나기’ 사례집엔 ‘불침번 때 갑자기 필요했던 볼펜을 빌려준 전우님 감사’ ‘배식을 도와준 전우님 감사’ 등 병영생활 속 감사사례가 넘쳐났다.

“가정의 달엔 부대원 부모님과 배우자에게 ‘100가지 감사’를, 연말엔 자녀들에게 감사편지를 쓰도록 감사운동을 진행한 해군 부대도 풍성한 감사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부대 간부들의 가족 관계가 돈독해지고 부대 내 안전사고도 눈에 띄게 줄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를 통해 전투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삼성 현대 포스코 등 유수의 기업이 진행하는 혁신 프로그램에도 감사운동이 도입돼 있다. 김 장로는 정기적으로 강의와 컨설팅을 하며 조직 내 변화관리, 긍정성 도모, 팀워크 활성화를 돕는다.

김 장로는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소통의 접점을 찾는 건 어느 조직에서든 가장 핵심이 돼야 할 운영원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직원 상호 간의 감사로 소통의 첫 단추를 끼우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토양이 갖춰지고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것을 표현하게 된다”며 “이를 통해 조금씩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로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은 어떨까. 그는 감사나눔신문도 ‘감사 DNA’를 갖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감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선 5가지든 10가지든 감사제목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5가지 감사를 지속적으로 쓰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했습니다. 회사 재정이 어려웠을 땐 대출을 받아서까지 인센티브를 지급했어요. 믿었던 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녀들에게 하숙생 취급을 받던 아버지는 ‘존경하는 아빠’가 됐고 매사에 소극적이고 회사에 정착하질 못했던 직원은 열정 넘치는 모범사원이 됐습니다. 이 정도면 대출받은 게 하나도 아깝지 않겠죠?”(웃음)

감사나눔신문엔 직원들이 감사제목을 적어 열매로 달아 놓은 감사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매일 새로운 열매가 달린다는 이 나무엔 감사를 보내는 직원과 감사의 대상이 되는 직원, 감사제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김용환 장로가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감사나눔신문 입구에 세워진 감사나무 앞에서 감사운동의 시대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고난 속에서 발견한 감사

겉모습만으론 평생 감사가 넘쳤을 것 같은 김 장로지만 그에게도 삶을 ‘감사’로 물들이게 한 사건이 있다. 27년 전 소아마비를 가진 채 태어난 아들 이삭군을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김 장로의 가족은 고난 속 진정한 감사를 깨달았다. 뇌세포가 크게 손상돼 ‘6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전국 방방곡곡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장로는 “슬픔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불평의 말을 쏟아내다 어느 순간 ‘감사합니다’를 고백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에서 역으로 마음에 감사를 새긴 게 온 가족을 ‘범사에 감사’로 물들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6개월 시한부 삶을 진단받은 이삭이는 가족이 만들어 준 감사의 품에서 13년 6개월을 함께했다.

김 장로는 ‘감사하다’의 반대말은 ‘무시하다’ ‘비난하다’가 아니라 ‘당연하다’라고 했다. 당연한 것들이 특별한 것으로 여겨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게 감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기 물 햇빛이 모두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창조에 대한 감사가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고 이 두 가지 감사가 든든하게 축을 이룰 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완성될 겁니다. 감사운동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