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 심사를 앞두면서 보험업계, 시민단체, 의료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10년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 왔다. 보험업계와 시민단체들은 “보험 가입자 편익을 위해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의료계는 “보험사가 건강 정보를 악용할 수 있고, 새로운 규제로 의료계를 옥죌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지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몇몇 보험사가 일부 대형병원과 개별 제휴를 맺고 ‘청구 간소화’를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법안심사를 오는 20~21일 진행할 예정이다. 분위기는 예전과 조금 다르다. 의료계가 내세운 핵심 쟁점을 두고 벌써부터 대안이 적극 논의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등 유관 부처도 전향적 입장을 보인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전산망을 활용해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금융위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2018년 12월 기준)는 3422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 과정이 번거로워 꾸준히 개선 요구가 이어져 왔다. 현행 체계에선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서류를 받은 뒤에 팩스나 우편, 이메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진료금액이 적을 경우 아예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가입자도 많다. 지난해 말 금융위와 복지부가 함께 설문조사를 했더니 ‘실손보험금 미청구 이유’(중복 응답) 가운데 77.7%가 “병원 방문과 증빙서류 보내기 귀찮아서”라고 답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의 핵심은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쉽게 탈 수 있도록 병원이 환자의 진료내역 등을 직접 보험사에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보험업법을 고쳐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이 관련 개정안을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 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의료기관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요청에 따라 진료비 증명서류를 전자문서 형태로 전송해주도록 한다. 다만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서류를 보낼 때 ‘중개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고용진 의원 안) 또는 제3의 전문중개기관(전재수 의원 안)에 위탁하도록 했다. 두 법안은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상정됐고 20일부터 이틀간 심사를 거친다.
국회 법안심사를 앞두자 찬반 논쟁은 가열된다. 특히 ‘중개기관’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료계는 심평원을 거론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 현황이 심평원에 노출될 수 있고, 정부가 비급여 항목 진료비 심사에 개입할 가능성을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과잉 진료로 얻는 수익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의료계 주장은 또 다르다. 비급여 치료 가운데 급여 치료보다 효과가 있는 것도 적지 않은데, 심평원이 과잉진료 여부를 따지면서 관여하면 의료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국회 안팎에선 절충안으로 심평원이 보험금 청구를 위한 자료를 ‘중개’만 하는 걸 제시한다. 전산망만 빌리고, 심사 평가를 할 법적 권한을 두지 않는 식이다. 이 방안에 대해 복지부와 심평원은 난색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 업무가 건강보험법상 심평원의 위탁 범위를 넘어설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제3의 전문 중개기관(가칭 보험중개센터)이 업무를 맡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보험연구원 생명·연금연구실 조용운 연구위원은 “전산망을 통합·연결하는 보험중개센터가 운영되면 이해 당사자에게 발생하는 여러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큰 틀에서 동의한다. 위탁 업무를 심평원이 담당할지, 별도 중개기관을 설립할지를 두고 복지부 등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현행 실손보험 청구 제도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병원, 보험사 등 당사자 모두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그 정도가 이미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겼다. 신속한 도입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