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내신 1등급을 외고·국제고 3등급 수준 취급

입력 2019-11-06 04:03
이은정 전국외국어고학부모연합회 회장이 5일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열린 일반고 전환추진 반대집회에서 외고·국제고 폐지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집회에는 연합회 소속 학부모 100여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에선 사실상 ‘고교등급제’ 시행이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일반고 내신 1등급을 외고나 국제고 3등급 수준으로 취급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대학이 평가하는 고교 내신등급의 가치는 ‘과학고→외고·국제고→자사고→일반고’ 순으로 고교 서열체제와 일치했다.

교육부는 5일 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교등급제 의심 사례 두 건을 공개했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내부적으로 고교별 등급을 정하고 입학사정 시 가점이나 감점을 하는 행위다. 교육부는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닌 고교의 ‘후광 효과’를 반영하는 고교등급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교육부가 공개한 A대학 사례를 보면 이 대학에 지원한 일반고 학생의 평균 내신등급은 1.98이었다. 평균 내신등급은 과목별 내신 등급에 학생이 이수한 과목으로 나눠 산출한다. 자사고는 3.44, 외고·국제고는 3.62였다. 합격자들의 평균 내신등급은 일반고 1.30, 자사고 2.26, 외고·국제고 2.86이었다. 즉 일반고는 1등급 초반대, 외고·국제고는 3등급보다 약간 높은 내신 등급 학생들이 합격했다는 얘기다. 이 학교 고교 유형별 합격률은 외고·국제고 19.5%, 자사고 5.7%, 일반고 4.3%였다.

B대학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일반고 출신으로 B대학에 합격한 수험생의 평균 내신등급은 1.5였다. 자사고는 2.6, 외고·국제고는 2.86이었다. A대학에 비해 일반고와 외고·국제고 내신 격차가 크지는 않았으나 외고·국제고, 자사고, 일반고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학의 고교 유형별 합격률은 외고·국제고 23.1%, 자사고 10.8%, 일반고 9.3%였다.


교육부는 “이러한 고교 유형별 서열화된 평균 내신등급 순서는 지원 단계부터 최종등록까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이번 실태조사로 고교서열은 명확하게 나타났다. 또 서열이 고착화했다는 증거도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다만 교육부는 이런 고교서열이 고교등급제에 따른 결과인지 정상적인 평가에 따른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류혜숙 교육부 학종실태조사단 부단장은 “분석 단순화를 위해 평균 내신등급을 분석했으나, 학종에서 학업성적은 전형요소 중 하나이며 선발 시 여러 전형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학은 평균 내신등급 자체를 입학사정 시 반영하지 않기도 한다. 현 단계에서 대학이 고의적으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교육 단체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영재고나 과학고, 자사고 등의 입시 실적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지만,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서열화를 해소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부모중심 교육시민단체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공국모) 이종배 대표는 “자사고가 폐지되면 과학고나 영재학교에 더 쏠릴 것”이라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나명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장은 “입시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와 특목고가 대학을 가는 데 수월한 구조는 맞는다”며 “앞으로는 고교서열화를 깨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2025년부터 하겠다는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방향으로 정책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