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스틸웰 “한국, 수혜국 아닌 공여국”… 방위비 인상 압박

입력 2019-11-06 04:05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틸웰 차관보는 2박3일간 한국에 머무르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5일 방한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우리 측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을 만나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고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인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거론할 전망이다.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스틸웰 차관보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에게 “한국 정부와의 생산적인 대화를 기대한다. 동아시아 지역 안보의 주춧돌인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다시 확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일 지소미아를 한·미 간의 문제로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를 촉구할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스틸웰 차관보는 또 “동아시아 발전에 있어서 한국은 6·25전쟁 직후에는 수혜자였으나 지금은 아주 강력한 공여국”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과 무관치 않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우리 측에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틸웰 차관보는 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하고, 조세영 1차관과 면담할 예정이다. 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도 만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방한에서 큰 관심을 끄는 이슈는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다.

우리 측이 지난 8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것에는 지소미아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시킨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의 상징인 지소미아를 깨는 것은 한·미 관계를 흔드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지소미아는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미 정부는 물론 워싱턴 조야에서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최근 들어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2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베이징, 모스크바, 평양이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뒤집지 않을 경우 미국은 다양한 층위에서 한국을 압박하고, 불이익을 주면서 ‘코리아 패싱’에 나설 수 있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적인 관련성은 떨어지지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된다면 미국 측이 한층 더 거세게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상황을 자세하게 전달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국이 한·일 관계를 핑계로 한·미 간 문제인 지소미아를 건드리자 미국이 당황한 상황”이라며 “지소미아 종료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유지를 위해 더욱 강하게 우리 측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임스 드하트 미국방위비협상대표. 연합뉴스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도 이날 3박4일 일정으로 깜짝 방한했다. 드하트 대표는 방한 기간 동안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비공식 만찬을 갖고, 국회와 언론계 인사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드하트 대표가 (3차 회의 전) 서울의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방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