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 ‘1단계 합의’를 앞두고 막판 줄다리기에 들어가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무역합의 서명 장소로 미국을 고집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합의를 위한 양보 차원에서 기존 대중 관세를 일부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중국은 더 많은 관세 철회를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합의 서명을 위한 양보 차원에서 지난 9월 112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부과한 15% 관세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120억 달러어치에 대한 관세는 미국 정부가 계획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15% 관세의 ‘1차분’에 해당된다. 1차분 수입품 목록에는 의류, 가전제품, 평면 모니터 등이 포함됐다. 나머지 ‘2차분’은 12월 15일 부과될 예정이다.
FT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이 이르면 이달 개최될 수 있다”면서 “서명이 완료되면 다음 달 15일 랩톱과 스마트폰 등 1560억 달러어치 중국 수입품에 부과키로 한 15%의 관세가 보류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합의에 직접 서명할지, 관세 철회가 현실화할지 분명치는 않다고 전했다.
중국 측 협상단은 자국 제품에 대한 관세 철회 범위를 늘리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중국은 1단계 합의가 서명되면 미국이 다음 달 15일 부과키로 한 1560억 달러어치뿐 아니라 앞서 9월 1120억 달러어치에 부과된 15% 관세도 함께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2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수입품에 부과하는 25% 관세도 철폐하거나 절반 수준으로 낮출 것을 원하고 있다. 향후 2년간 500억 달러(약 58조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고 중국 금융시장 개방,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 중국 측 성의에 미국도 상응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현재 1단계 합의 진행 상황과 관련해 “거의 타결됐다”며 “그러나 기술이전 강요나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 등에 대한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1단계 합의가 이뤄지면 시 주석이 합의서 서명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체결 서명 장소로 미국을 두 차례나 거론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선거운동을 위해 무역협상 성과를 자국민에게 과시하고 싶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상에 진전이 있다. 나는 합의를 원한다”며 “만약 합의가 성사된다면 회담 장소 결정은 아주 쉽울 것이다. 그것은 미국 내 어딘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칠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취소되자 지난 1일에도 “(서명 장소로) 다른 몇 곳을 보고 있다. 아이오와에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오와주는 미국 내에서 최대의 대두, 옥수수, 돼지 생산지역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이다. 시 주석도 미국을 방문해 무역합의에 서명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당초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은 ‘국빈방문’ 형태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국빈이 아니어도 방미는 가능하다는 분위기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