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신께 가까이 나아올 때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이를 예물법이라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다른 말로 ‘너희가 예물을 드리면 내가 받아주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물을 드릴 기회가 제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2) 히브리 사람들은 누구나 예물을 드린다는 이중적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드리다’의 의미로 사용하는 ‘카라브’라는 단어는 본의상 ‘가까이하다’라는 더욱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물을 드리러 가는 히브리인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예물법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입니다.(시 73:28)
거룩을 말씀하시는 레위기는 예물법으로 시작합니다. 예물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통로이며 이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마음을 다하는 예물법은 삶의 거룩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습관대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지적하십니다. 육체의 할례는 받았으나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한 것입니다.(렘 9:26)
“그리고 그 땅의 십 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 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레 27:30) 레위기의 마지막은 십일조로 마칩니다. 모든 예물의 근본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예물은 예물의 거룩법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시어 예물로 받으신 지파입니다.(민 8:14~19)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스라엘의 장자를 받으시고 거룩하게 구분하셨습니다. 레위 지파를 지극히 거룩하게 하심으로 레위 지파와 연결된 나머지 12지파도 온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십일조는 전체 10중에 1을 받으시고 남은 것들을 거룩하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법입니다. 그 법대로 남은 10분의 9가 온전하게 되어 이 땅에서 나를 염려시키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재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물 생활을 하고, 나의 삶을 예물로 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보물은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결코 좀이나 동록이 먹지 않습니다.(마 6:2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채 십일조 생활을 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긍휼과 정의와 믿음을 가지고 십일조 생활을 할 때 온전한 예물의 삶을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이것은 거룩한 삶을 위한 길입니다. 그래서 예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위해 다시금 주님을 가까이하며 살 수 있는 거룩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일은 최고의 예물이시요 유일한 예물이신 예수님과 연합될 때 가능합니다.(롬 12:1)
교회의 몸이 될 때 예물의 모든 의미와 뜻을 알고 드리는 삶이 이루어집니다. 예물 생활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을 받습니다. 지금 나의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온전히 드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을 때 진정한 내 소유가 됩니다.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나머지를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물의 거룩법이요, 온전한 예물이신 예수님과 연합하는 길이요, 이 연합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길을 주시는 주님께 예물의 거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이윽고 영생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이강우 서울 좋은나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