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대사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 초청 리셉션’에 참석했다. 기독교계와 관련된 사건이나 교회 내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의견을 피력하거나 신문 지면에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혹시 그런 분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관련된 글이 나오지 않아 내가 펜을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온 사람이다. 정치적으로는 극단적 행동을 삼간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집회를 갔을 때도 대통령 하야 서명운동을 하는 분들이 교회까지 들어와 내게도 서명해 달라 했을 때 이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거부했다.
“여러분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니까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이런 일을 하면 기독교와 한국교회가 불필요한 이미지 소모를 하고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꼭 하시려면 교회 밖에서 해 주십시오.”
그 일로 인해 나는 엄청난 오해와 공격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성경의 진리와 기독교 가치를 지키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건강한 사회를 보존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온 사람이다. 어느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켜오면서도 문재인정부가 성공하기를 정말로 바라고 기도해 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외교단 초청 행사라고 하지만 동성결혼 부부를 초청한 청와대의 처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문 대통령을 선거 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공식 석상이나 사석에서 만난 대통령은 성품이 매우 온유하고 겸손하며 특히 타인의 말을 잘 경청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을 받아치거나 자신의 주장만 강력하게 고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착한 분임이 틀림없다. 대통령으로서는 외교단 초청 행사였으니 모든 외교관을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성결혼 부부라고 해서 초청하지 않으면 곤란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동성결혼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독교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동성결혼 부부를 꼭 초청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배우자 없이 터너 대사만 초청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였을 것이고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배우자까지 초청해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동성애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한국 기독교계와 국민 입장에서는 자칫 동성애를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조장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그렇지만 참모들이 정무적 판단을 잘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론이 양분돼 있는데 청와대에서 동성결혼 부부를 초청해 행사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참모들이 여기까지 생각 못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정무적 판단을 했으면 한다. 종교계의 소리만을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계 요구를 넘어 국론을 통합하고 하나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피하고 나서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대통령이 대선 전에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기에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는 아니다. 누구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 그들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국민의 70% 가까이가 동성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상황에서는 국가 지도자와 주변 참모들은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올바른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사소한 일들이 쌓여 불신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공연한 오해와 불신이 축적되면 더 큰 국론 분열을 일으킬 수 있음을 꼭 지적하고 싶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