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남북 체육교류 환상 버려야

입력 2019-10-29 04:01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다.”

2017년 6월 2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와 남북 단일팀을 제안했다. 기자들이 개막식에 참석한 북한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이에 대해 질문하자 정치적 환경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후 남북 스포츠의 동행은 봇물을 이루면서 이 말은 금세 잊혔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공동입장에 이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선보였다. 7월 통일농구대회가 평양에서 열렸고 한 달 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 농구와 카누 종목 등에서 단일팀이 탄생했다. 지난해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도쿄올림픽 단일팀 종목까지 결정됐고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에도 합의했다. “정치 위에 스포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는 스포츠가 이끄는 듯했다.

하지만 착시임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뒤 냉각된 남북 관계의 여파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났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만남은 감감무소식이다. 우리의 일방적 구애만 있었을 뿐 북한은 듣는 체 마는 체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평양 깜깜이 월드컵 예선전’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초청했음에도 버젓이 무관중 무중계 경기를 진행했다. 외딴 섬에서 진행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아닌데 국가대표 선수들은 평양에 있던 2박3일간 휴대전화도 없이 호텔에 사실상 감금됐다. 그라운드에서는 격투에 가까운 북한 선수들의 몸싸움을 상대했다. 황당무계한 경기의 민낯은 세계에 고스란히 알려졌다. 장웅 위원의 말이 남북 관계의 현실임을 실감한 순간이다.

사실 지난해의 흥분에 도취돼 그렇지 역사적으로 봐도 남북 스포츠 교류의 자생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를 시작으로 이듬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의 감격과 충격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련 붕괴, 김일성 사망, 영변 핵사찰 등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포츠 교류는 찬바람을 맞았다. 대북화해정책을 편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잠시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정권 교체와 이어진 남북 긴장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쳇바퀴처럼 도는 패턴이었다.

이제 정부도 냉철해져야 한다. 북한은 스포츠를 철저하게 정치의 종속변수로 상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평화의 마중물’이라며 스포츠 교류를 남북화해의 필수조건인 듯한 환상을 국민에게 심어줬다. 아니 정부 스스로가 미몽에 빠져 현실 감각이 턱없이 모자란 모습마저 보여줬다. 깜깜이 경기 사태 이후 통일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무관중 경기가 응원단 없는 남한을 배려한 것인 양 말했다. 대통령은 북한의 실체를 드러낸 평양 예선전 3일 후 외국 대사들 앞에서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 지지를 당부했다. 이 정도면 순진한 것인지 뻔뻔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엄밀히 말해 평양 경기를 통해 사실상 올림픽 공동개최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하고 남의 나라 선수단을 멋대로 감시·통제하는 국가가 어떻게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스포츠 축제를 열 수 있겠는가.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체제 상황에 따라 널뛰기하듯 표변하는 북한의 태도를 믿고 유치 전략을 짤 수도 없다. 물론 이번 일로 남북 간 체육 교류를 끊을 필요는 없다.

다만 철저히 스포츠로서의 관점과 규칙을 통해서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것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스포츠는 정치·외교의 수단도, 갈등 해소의 전유물이 돼서도 안 된다. 이것이 평양 사태의 소중한 교훈이다. 환상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