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동엽] 新40대 기수론

입력 2019-10-29 04:03

요즘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가 역동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미래를 향해 매진하는 활력을 느끼는데 우리는 다들 지치고 답답해하며 전체 사회가 급체에 걸린 듯 오도가도 못하는 느낌이다. 특히 정치는 1980년대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단지 40년 전 산업화와 민주화를 두고 갈등하던 사람들 간 공수만 바뀌었을 뿐 좌우 진영의 어젠다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전 세계가 100년 만의 대변동이라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좌우 모두 나름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80년대처럼 친노동과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진보와 친자본과 반공을 외치는 보수가 대립하고 있다. 정권을 잡아도 진보는 마치 80년대 대학운동권 동아리처럼 나라를 운영하고, 보수는 군사정부 공안검사들처럼 리스트를 만들어 상대방을 감시하고 탄압한다. 40년이 흘렀는데 왜 우리는 시대착오적으로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들이 40년 전과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글로벌 추세에 비해 무척 나이가 많다. 진보의 차세대 리더로 불리는 김경수, 송영길, 이인영, 임종석, 조국은 물론 한때 유력했던 안희정과 이광재, 이재명은 모두 외국 같으면 원로급인 50대 중후반이며, 이낙연과 김부겸, 박원순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는 이미 60대 중후반이다. 보수 측은 더 심각한데 소장파 젊은 피로 불리던 나경원, 오세훈, 원희룡, 유승민, 정병국은 물론 정치를 그만둔 남경필도 모두 50대 중후반이나 60대이며, 당대표인 황교안과 손학규는 60대와 70대다. 책사와 논객들도 나이가 들어 유시민과 홍준표 모두 60대 중반 가까이 되었다.

글로벌 추세는 정반대다. 주요국들에서 30, 40대 젊은 국가원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크롱은 39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됐고, 트뤼도가 캐나다 총리가 된 것은 43세였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알리는 42세로 에티오피아 총리가 됐고, 아일랜드의 버라드커는 38세에 그리고 뉴질랜드의 아던은 37세에 총리가 됐다. 재작년에 쿠르츠가 오스트리아 총리가 됐을 때 불과 31세였고,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도 47세였다.

유독 최근에 젊은 국가원수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지금이 역사적 대전환기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현대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100여년 만에 처음 보는 역사적 대변혁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가 알던 세계와는 그 원리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역량과 가치관을 가진 리더를 요구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 기존 가치관과 관행을 대표해온 리더들이 근본 변신을 하기는 어려운데, 기존 성공방정식이 오히려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성공의 덫’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 정치를 항상 노회한 기성세대가 지배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켜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 44세였고, 60년대 말 박정희 3선을 막으려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으로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불과 42세였으며, 치열한 경선 끝에 역전승해 후보가 된 김대중은 45세였다. 진영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이들이 우리 역사에 나름대로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판에서 이런 젊은 리더의 존재감은 전무하다.

리더십은 사회를 미래로 이끌고 가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정치인들은 반대로 과거로 퇴행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현 정부가 미래가 아닌 과거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선택한 것은 참으로 아쉽다. 이제 개발 세력들과 민주화 세력 모두 자신들이 주역이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새 시대에 맞는 젊은 리더를 내세워야 한다. 지금의 숨 막히는 역사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50대만 돼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 리더는 30대 중후반이나 늦어도 40대 초반이라야만 하고 가능하면 20대도 좋다. 지금이야말로 좌우 모두 ‘신 40대 기수론’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