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의 문화산책] 집사님, 내 옆자리에 앉으세요!

입력 2019-10-29 18:08

동물행동 생태학자인 임신재는 ‘동물행동학’이라는 책에서 동물행동 연구를 소개했다. 1934년 오스트리아 알텐베르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물행동 분야의 석학인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동물행동을 탐구하는 실험을 했다. 첨단장비를 갖춘 실험실이 아니라 시골 마을에서 회색기러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로렌츠는 갓 부화한 새끼 회색기러기가 처음에 본 물체를 보고 따라 다니는 행동을 발견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둥지에서 꺼낸 몇 개의 알은 인공 부화기에서 부화시켰고, 나머지 알은 둥지에서 어미가 품게 했다. 어미가 부화시킨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다니면서 성장하였고 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부하가 된 새끼들은 처음 몇 시간 동안 어미가 아닌 로렌츠와 같이 있었다. 이들은 사람을 쫓아다녔고, 어미가 부화시킨 다른 새끼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갓 부화한 회색기러기는 처음에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했고 이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현상을 ‘각인(imprinting)’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물이 야생 본능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동물은 언제나 인간의 영향권 아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동물은 자신이 다니던 길에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해 늘 다녔던 길로만 다닌다. 기억되고 학습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성을 아는 인간은 동물이 다니는 길목에 올무를 놓아 사냥을 한다. 반달곰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해도 끝내 야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곰이 있다. 이처럼 동물이 본성을 잃어버리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인간의 습관도 반복된 행동이나 습관에 길들면 쉽게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 모양이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을 관찰해 보면 앉는 위치와 좌석이 정해져 있다. 교회에 전세나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앉았던 그 자리를 사수한다. 어떤 사람이 특정인의 자리인지 모르고 그 자리에 앉으면 비키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예배당 좌석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 함께 앉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 예배 때 옆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인맥과 관계를 살필 수 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천국에 가는 날까지 늘 같은 사람과 함께 예배드릴 것 같다. 문제는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아쉬움이다. 교회의 결함이 될 일은 아니지만 관계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가끔 서로 만남과 대화가 없었던 사람들과 같이 앉아 예배드리라고 권면해 본다. 그러나 자리를 옮겨 앉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습관은 여전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서로 축복하게 해도 늘 그 사람이다. 마치 학습되고 기억된 동물의 행동처럼 굳어진 습관은 성도들의 예배 좌석 선택에도 나타난다. 사귐이 없어 관계가 서먹한 사람과 눈길을 마주쳐 눈웃음이라도 건넬 기회조차 쉽지 않다. 이처럼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불편한 심리는 한국인의 삶에 뿌리 깊게 내려진 폐쇄된 문화이다.

유영설 여주 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