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계명을 주신 목적은 ‘행복’을 위함이었습니다.(신 10:13) 행복은 믿음의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믿음의 행복을 위한 키워드는 바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관점에서 생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은 하나님 심판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을 보세요. 하나님은 마음의 뜻과 생각을 판단하시는데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생각은 믿음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선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롬 8:5~9)
또한 생각은 행복의 지수도 결정합니다. 무명인이 쓴 시 ‘발자국(Footprint)’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과 함께 나란히 모래사장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과 한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힘든 나를 두고 어디 가셨었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다. 네가 힘들어해서 내가 너를 업고 갔었다.”
사실은 그대로지만 사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생각의 변화가 감사와 감격 그리고 행복의 지수를 결정합니다.
행복한 믿음의 삶을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삶의 유한성을 경험합니다. 이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 삶의 한계성을 해결해 줄 전능하신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경험할 때 인간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 확신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천국의 걸인’이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입니다. 차이가 뭘까요.
걸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구걸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구걸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뜻을 알면 ‘안 된다’고 하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겐 구걸만 하는 걸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도록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권고하십니다.(롬 8:16)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자녀 된 나를 하나님께서 섭리와 은혜로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구걸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요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산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고난의 위력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지 방법도 고민합니다. 믿음은 방법을 찾는 과학이 아니라 누가 해결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는 신비입니다.
성경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보십시오. 그 안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HOW) 되었는지 방법론적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누가(WHO) 그 일을 이루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계산해 보면 고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생각도 가져야 합니다. 창세기 12장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그의 후손을 자신의 백성으로 세우신 목적은 열방을 향한 사명을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후손들은 사명을 망각한 채 특권의식으로 사랑이 아닌 차별과 정죄로 하나님을 실망하시게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 책망을 받게 된 요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염려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인가요.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는 것이었습니다.
김윤환 목사(인천 예수소망하나교회)
◇김윤환 목사는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예수소망하나교회를 19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에 소속된 교회로 민족과 역사의 영적 지주목이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 선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