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황에서 재정지출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은 맞는다. 지금처럼 경기가 빠르게 나빠지는데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필요성을 부정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통화정책도 기대할 만하지만, 금리가 더 내려갈수록 효과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25%인 지금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판이다.
물가도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오니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만으론 분명히 경기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 20년 장기 불황 극복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퍼부은 일본이 거울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로 겨우 숨통을 텄는데, 법인세 인하, 노동·환경 규제 완화, 엔화 약세를 통한 수출 확대가 주 내용이다. 재정 지출 확대는 필요조건일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결코 아닌 것이다.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위가 23일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재정정책 만능론에 대한 가시 돋친 지적들이 나왔다. 조세재정연구원 윤성주 연구위원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정책조합이 중요하다. 특히 구조개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규제와 진입장벽 완화, 노동시장 제도 개선 등의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재정지출 확대는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만을 초래할 수 있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한국은 단기적 재정확장을 위한 재정 여력은 존재하지만, 중기적 관점에서는 재정 여력이 불충분하다”고 경고했다. 현재 국가채무가 GDP의 40%를 밑돈다며 중장기 재정 악화 가능성을 기우라고 하는 청와대의 낙관론과 결이 다르다.
재정적자 지속은 구축효과를 통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위험도 크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재원을 늘리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 이자율이 올라 민간 투자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재정 확대는 결코 경기 회복의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재정정책 효과를 당연시하다 중장기 성장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설] 구조개혁 없이 재정 투입만으론 안 된다
입력 2019-10-2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