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예수님의 EQ를 닮자

입력 2019-10-24 00:06

오늘 나눌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0~12절이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감정 지능’을 이야기하려 한다. 감정 지능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IQ의 시대가 가고, 감정 지능을 의미하는 EQ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한 다니엘 골먼은 ‘감성 지수’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IQ보다 EQ가 높다. 감정 지능이 높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감정의 변화를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과 타인에게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정 지능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지능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데 상대방의 감정이 거칠다면, 감정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대의 얼굴이나 숨소리, 눈빛에서 감정을 읽어 낸다. 상대방에게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는 걸 빠르게 인지한다. 그 감정의 온도가 폭발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한다. 감정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 온도를 낮추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돌이키게 하는 데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낸다. 목소리 톤을 낮추거나 상대방의 감정에 호응을 보내는 게 대표적이다. 상대방과 자신 사이에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을 유도할 줄 안다.

그러나 감정 지능이 낮은 사람은 상대의 얼굴과 눈빛을 봐도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감정 지능을 엿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전부터 계셨다. 늘 세상에 계셨던 존재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로 지어졌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를 몰라봤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지만, 백성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냈다. 우주보다 큰 영광을 버리고 시내산으로 내려오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

1m밖에 되지 않는 가시나무로 만든 좁은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당신을 희생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만 갈구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더 낮추고 구겼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존의 모습으로 온 것이다. 풀처럼 허무하고 연약한 육신이 돼 오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들의 배반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오셨다. 자신을 죽이고 못 박은 더러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상처를 준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외면할 때마다 시내산의 돌판이 되기도 하고 언약궤가 되기도 했다. 육신으로 우리 옆으로 왔고 성령이 되기도 했다. 우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이 된 셈이다.

예수님의 감정 지능을 배워야 한다. 이웃과 가족, 세상 사람을 향해 복음의 빛으로 들어가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아져야 한다. 성육신처럼 그들의 삶의 자리 밑바닥을 기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오신 그리스도처럼 포기하지 말고 그들의 마음을 두드려야 한다.

감정 지능이 높은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나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감정 지능을 느끼고 그대로 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