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검찰 개혁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국민들의 공감을 모았던 사안도 정치적 공방이 이뤄지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이 더 높아지고 정치적 갈등은 곧바로 국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여야 간 찬반이 첨예한 공수처 설치에 대해 ‘개혁에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등 야권을 겨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국민 통합이라는 면에서는 우리 나름대로는 협치를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고, 또 많은 분야에서 통합적인 그런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력을 해왔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에 대한 건강한 논의들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논의 없이 정치적 공방거리만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분야별로 특권이나 반칙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였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이번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공정에 대한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적인 반칙이나 특권뿐만 아니라 합법적 제도 속에 내재된 불공정까지 모두 해소해 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였다”며 “국내 정치권이 제도 속에 어떤 불공정한 요인이 있고,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세계 경기 하강으로 우리 경제가 어렵고, 북·미 대화가 막히면서 남북 관계도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일부 종교 지도자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 분열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복 목사(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는 “종교인이 앞장서 달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분명 한계도 있다”며 “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갈등을 해소하는 단초가 만들어질 것이다. 정부도 통합에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도 “나와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지 말고 국론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증오,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게 문제”라며 “관용의 정신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동성애 문제도 거론됐다. 문 대통령은 김 목사가 최근 국내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다고 제기하자 “동성혼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22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에 나선다. 이번 연설은 513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의 편성 방향과 집행정책 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경제 활성화와 산업구조 개편, 미래 대비를 위해 확장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이날 종교계 간담회 발언에 대해 “조국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대통령이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 한다”고 반발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