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으로 불리는 5만원 신권이 조폐공사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 흐르는 영상에서 우리는 작가가 뭘 하려는지 눈치채게 된다.
서울 마포구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함양아(51) 작가의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은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자본주의 사회의 풍속도를 특유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1층에 영상 몇 점이 애피타이저처럼 제공되고, 지하로 내려가면 ‘주요리’ 작품이 극장 스크린처럼 거대한 화면에 펼쳐진다.
화면의 독특함은 회화와 영상의 콜라주(오려서 붙이기 기법)라는 데 있다. 작가는 잡지와 인터넷 등에서 따온 이미지들에 거기에 어울리는 퍼포먼스 영상을 따서 붙였다. 움직이지 않는 회화에 움직이는 것이 어울려 이종배합처럼 재미있다. 그래서 주제가 가지는 무거움이나 불편함이 상쇄된다. 더욱이 15세기 플랑드르 풍속화 같은 영상은 중세적이면서도 미래적인 화면을 만들어내 묘한 매력이 있다.
백지 위에 이미지들이 바둑돌을 두듯 하나하나 쌓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갖는 2차원적 정부 조직도가 있고, 그 좌우에 빈부를 상징하는 세상이 있고, 부자 세계로의 진입을 막는 장벽과 그 콘크리트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 등이 겹쳐진다. 대자연은 고층 빌딩으로 바뀌고, 신자유주의의 전파자였던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정상에서 호령하고,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계는 끊임없이 ‘달러’를 먹여줘야 가동되고, 그 기계 안으로 서서 들어갔던 사람들은 나올 때 등이 굽어 있는 등 알레고리가 풍부하다.
‘정의되지 않는 파노라마 2.0’은 향후 몇 년간 버전을 달리하며 진행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광장’전에는 1.0버전이 소개되고 있다.
작가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 전시는 9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작가는 한국, 네덜란드, 터키 등 여러 지역에 거주한 경험을 토대로 사회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화된 자연에 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