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콕 집어 방사선 쪼여 수술같은 효과 낸다

입력 2019-10-21 19:55 수정 2019-10-21 23:52
고려대 안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윤원섭(오른쪽) 교수가 첨단 방사선 장비인 트루빔STx를 활용한 암 환자 치료를 시연하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모(76)씨는 건강검진에서 뜻밖의 직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암이 작지 않아 내시경으로 떼내는 시술이 불가능했다. 외과 수술을 고려했으나 나이가 고령인데다 다른 질환까지 추가로 발견돼 의료진 권유로 수술 대신 최첨단 방사선 장비 치료를 받기로 했다. 고용량의 방사선을 암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쪼이는 ‘정위적 방사선 치료’를 5주간 받고 6개월 뒤 검사결과 암 덩어리가 말끔히 사라졌다. 내시경 조직검사에서도 암 조직이 발견되지 않아 추가 치료없이 추적 관찰 중이다.

방사선 치료는 높은 방사선 에너지를 암 조직에 조사(照射)해 암세포를 파괴하고 성장을 멈추게 하는 표준 암 치료법이다. 국내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 비율은 27%(2014년 기준)에 불과하다. 전체 암 환자의 50~60%가 방사선 치료를 받는 유럽, 미국 등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방사선 치료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공포와 선입견이다.

실제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부작용이 심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선은 치료받는 부위에만 영향을 준다. 직장암을 방사선 치료하는데 머리가 빠지지 않고 폐암을 치료하는 데 설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암 치료 부작용으로 흔히 알려진 탈모와 구토, 전신 피부변화 같은 증상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아울러 방사선 치료는 말기 암 환자의 증상 완화나 수술 후 보조 치료로만 활용된다고 많이 인식돼 있다. 이 또한 오해다.

근래 방사선 치료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그 자체만으로 완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암이 최소 7종이나 된다. 두경부암(코·목 뒤 인두와 후두 부위 암)과 성대암, 폐암, 간암, 자궁경부암, 전립선암, 항문암 등이다. 이런 암들은 비교적 발생 부위에 머물러 있고 다른 장기에 전이가 없을 때(병기로 따지면 1, 2기)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완치까지 가능하다.

고려대 안산병원 첨단 방사선치료클리닉 윤원섭 교수는 21일 “특히 두경부암, 방광암, 항문암 등은 방사선 치료만으로 완치 뿐 아니라 암이 생긴 조직의 기능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자궁경부암이나 전립선암의 경우 수술과 같은 성적을 얻으면서 수술로 인한 배뇨장애나 성기능장애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 치료는 보통 입원이 필요하지 않고 하루 수 분에서 20분 정도 받으면 된다. 치료시 고통이 없다. 단 5~8주간 병원을 매일 내원해야 하는 불편은 따른다. 만약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비슷한 완치율을 보인다면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을 통해 두 치료법 간의 부작용이나 치료비, 치료기간 등을 비교해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트루빔STx 장비로 암 병변을 치료한 직장암 3기 환자의 장 속 모습.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방사선 치료 장비가 ‘트루빔 STx’다. 기존 방사선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기능이 업그레이드됐다. 기존 장비보다 더 정밀하게 조준해 암에만 높은 방사선량을 집중시키는 이른바 ‘방사선 수술’에 특화돼 있다. 방사선 수술은 한 번에 고용량의 방사선을 쪼여 마치 수술로 암을 제거한 것 같은 효과를 얻는다고 해 붙은 명칭이다. 정확한 용어는 ‘정위적 방사선 수술(SRS)’이다. 한 차례가 아닌, 2~5회에 나뉘어 방사선 치료가 끝날 땐 ‘정위적 방사선 치료’로 불린다.

트루빔 STx는 수술이 어려운 몸 깊숙한 부위, 혈관 가까이 있는 암을 치료하기에 용이하다. 재발하거나 전이된 암에도 부담없이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윤 교수는 “특히 다른 장기로 암이 퍼진 4기의 경우 기존엔 항암치료가 기본이었지만 전이된 장기 수가 적으면 트루빔 STx를 이용한 정위적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고가 최근 나오고 있다. 재발암도 원격 전이암과 비숫한 수준의 소수 재발이라면 이런 방식의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트루빔 STx의 큰 장점은 현존하는 암 치료용 방사선 치료기(선형 가속기) 중 가장 세밀한 ‘조준경’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다엽 콜리메이터(MLC)’로 불리는 이 장치는 암 모양에 맞게 치료 범위를 설정하는 것으로, 크기가 작을수록 더 정밀하게 암을 조준할 수 있다.

트루빔 STx의 조준경 크기는 2.5㎜로 기존 장비(5㎜)보다 더 작아져 좀 더 암 모양에 가깝게 치료 범위를 만들 수 있다. 또 고해상도 CT영상을 통한 치료 시뮬레이션과 환자가 누웠을 때의 실제 자세 일치도의 오차 범위가 0.1㎜에 불과하다. 그만큼 암만 콕 집어 방사선을 정확히 쪼이고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은 최소화된다. 이와함께 숨 쉴 때 마다 움직이는 암의 위치를 추적해 그에 맞게 환자 위치를 조절하는 시스템도 탑재됐다.

윤 교수는 “기존 방사선 치료기는 종양 위치 추적 장치가 아예 없거나 장착됐더라도 기계적 오차가 크고 방사선 출력이 낮아 치료 도중에 종양이 움직이고 치료 시간이 길어지는 반면 트루빔 STx는 표적이 되는 종양을 정확히 영점 조준해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환자가 누운 테이블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다양한 방향에서 방사선을 조사하는 ‘하이퍼 아크(HyperArc)’ 시스템도 붙어 있다. 주로 뇌 전이암과 두경부암 치료에 쓰인다. 트루빔 STx는 국내 10여곳의 의료기관에 보급돼 있다. 고대 안산병원은 올해 하이퍼 아크를 탑재한 장비를 국내 두 번째로 도입했다. 윤 교수는 “정교함, 정확성, 신속성 3박자를 두루 갖춘 트루빔 STx로 고도의 정밀 방사선 치료를 편안히 받을 수 있다. 환자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