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공수처 설치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고,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끊어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공수처가 대통령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무소불위의 수사기관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국회 논의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안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안을 토대로 이뤄진다. 두 안은 일부 차이가 있지만,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 수사를 검찰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독립된 수사기관에 맡긴다는 점에서 골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은 물론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 7000여명이다. 전체 숫자 중 상당수는 법관 3228명과 검사 2397명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견제받지 않았던 검찰과 법원에 대한 직접적인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또 군 장성 420명과 경무관 이상 경찰 112명도 대상이다.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다.
백 의원과 달리 권 의원 안은 ‘현직’에 한해 수사가 가능하다. 백 의원은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수수,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죄 등 형법 제122~133조의 죄를 모두 수사할 수 있다. 반면 권 의원 안은 해당 형법 조항 중 선거방해죄, 피의사실공표죄를 빼고, 부패 및 청탁 범죄를 포함했다. 공수처 설치 반대 쪽에선 전직까지 포함할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보복’성 수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공수처 운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관의 수장을 누가 어떻게 임명하느냐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다. 두 법안 모두 후보추천위원에서 2명을 추천한 뒤 대통령이 한 명을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토록 하고 있다.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2명, 야당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5분의 4 이상의 찬성으로 후보 2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권 의원 안은 백 의원 안과 달리 인사청문회 뒤 국회 동의까지 받아야 임명할 수 있도록 국회의 견제권을 강조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임명 방식도 다르다. 백 의원 안은 인사위원회 추천을 받아 처장 제청을 거친 뒤 대통령이 최종 임명토록 했다. 반면 권 의원 안은 인사위원회 추천을 거치면 처장이 곧바로 검사로 임명할 수 있다. 야당은 결국 대통령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게 되고, 대통령 하명기관이자 직속 사정기관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공수처가 공직자 비리를 수사하고, 기소권은 서울중앙지검이 갖는다. 다만 공수처 수사 사건 중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포함한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기소권도 함께 갖도록 했다. 검찰과 사법부 견제를 위한 제도 도입이라는 취지에 맞춰 수사권과 기소권을 제한적으로 함께 부여한 것이다.
기소 방식에서는 현재 두 법안에 차이가 존재한다. 백 의원 안은 공수처가 수사 후 기소를 자체 결정토록 했다. 반면 권 의원 안은 만 20세 이상 국민 중 무작위 추출로 뽑혀 위촉된 위원 7~9명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에서 심의 및 의견을 거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현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 도입이 더 미룰 수 없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때부터 공수처 도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대통령 후보 시절은 물론 취임 후에도 줄곧 공수처 법안 처리를 국회에 요청해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만든 안을 토대로 마련된 백 의원 안은 오랫동안 여권에서 검토해 마련한 안이라 할 수 있다.
이날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공수처 설치가 쟁점이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은 전임 검찰총장부터 부패 역량이 강화된다면 새로운 부패 대처 기구 설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