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무역협상 중단”… 이제야 터키 제재 나선 트럼프

입력 2019-10-16 04:05
사우디아라비아를 12년 만에 전격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의 왕궁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과 대화하고 있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 등으로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타스연합뉴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으로 미국의 주요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 및 세력 4곳이 역설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악수(惡手)가 중동지역에서 적들의 입지를 넓혀주는 효과만 낳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시리아 철수로 득을 보는 미국의 가장 큰 적 4곳’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의 비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 이슬람국가(IS)가 미군 철수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시리아 내전과 IS 격퇴전에서 미국과 손잡고 함께 싸운 유럽과 쿠르드족 등 동맹 세력들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자진해 시리아 내부 영향력을 포기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폭은 한층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내내 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지했던 러시아는 지난 주말 시리아 반군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 공군기를 보내 반복적으로 폭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중동지역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10여년 만에 전격 방문해 왕실 지도부를 만났다. 전통 우방인 이란 외에 사우디와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다져 미국이 빠진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를 이은 독재정치로 비난을 받아온 아사드 정권에도 미군 철수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쿠르드족과 내전 내내 적대했던 아사드 정권이 터키 침공에 맞서 손을 잡는 이례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러시아는 양측이 손을 잡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WP는 아사드 정권의 또 다른 후원자이자 미국의 적국인 이란 역시 미군 철수로 이득을 챙길 것이라고 전했다. 쿠르드족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IS도 미군 철수의 수혜자로 지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터키 경제를 신속하게 파괴할 준비가 완벽히 돼 있다”며 터키에 대해 경제 제재 칼날을 꺼내 들었다. 터키에 신규 제재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자신의 묵인이 터키 침공을 불러왔다는 비난을 의식해 본격적인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관세를 50%까지 인상해 지난 5월 인하되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것”이라며 “미 상무부 주도로 터키와 진행돼온 1000억 달러(약 118조원) 규모의 무역협상을 즉각 중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재무부는 훌루시 아카르(국방), 쉴레이만 소일루(내무), 파티흐 된메즈(에너지) 등 터키 장관 3명을 재무부 블랙리스트에 등재하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거래 중단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조만간 터키에 보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군 철수로 IS가 세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소규모 미군 병력은 시리아 남부 앗 탄프 기지에 남길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주둔했다가 철수하는 1000여명의 미군도 역내 재배치해 IS의 발호를 막겠다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