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일정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SLBM 도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한계선)은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을 향해 도발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대화와 협상 의지를 강조했다. 이번 도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SLBM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협상 판은 깨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것을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내세웠다. ‘핵실험 및 ICBM 발사’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해놓은 셈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의 SLBM 시험 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어놓은 레드라인 개념의 틈을 파고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도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SLBM 발사가 분명히 위협적인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도발로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안보 업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SLBM 카드까지 꺼내들며 미국을 압박한 것이 실무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SLBM은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에 미국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계속 옹호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북한이 미 정부 인사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 실무협상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실무협상 결과를) 단정적으로 예단할 수 없지만, (양측이) 충분히 준비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새로운 계산법’의) 구체성이 나올 것 같다”며 “서로 이견을 좁힐 만큼의 융통성을 가지고 오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한편 북한은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을 권정근에서 조철수로 교체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북한 러시아대사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자국 대사와 정부 인사가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겸 미국연구소장 조철수를 만났다고 밝혔다.
조 국장은 주제네바 북한대사관 근무 경력이 있는 고위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3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외신 상대 기자회견에도 배석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을 주도하게 된 외무성이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김혁철 전 대미특별대표를 김명길 순회대사로 교체하는 등 대미 라인 정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