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만 두 번째 치러진 이스라엘 조기총선 출구조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진영이 중도 진영에 뒤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써 13년 넘는 최장기 재임 기록을 가진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이 전했다.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날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통계를 인용해 전날 치러진 총선 투표를 90% 개표한 결과 베니 간츠가 이끄는 청백당(Blue and White party)이 32석으로 1위를 기록했고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이 31석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아랍계 정당들의 연합인 ‘공동명부(Joint List)’가 13석으로 3위를 차지했고, 유대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정당 샤스당과 토라유대주의당(UTJ)이 각각 9석과 8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청백당과 아랍계 정당을 비롯한 중도·좌파 정당들의 의석은 모두 56석이고 리쿠드당과 유대주의 정당 등 네타냐후 동맹은 55석을 얻을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청백당과 리쿠드당 중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캐스팅보트를 쥔 세속 극우정당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스라엘은 우리 집)’은 9석을 확보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정당 대표들과 협의해 연정 구성 가능성이 높은 당수를 후보로 지명하고 연정 구성권을 준다. 총리 후보가 지명되고 42일 안에 연정을 출범시키면 총리직에 오르지만,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다른 정당 대표를 총리 후보로 지명해야 한다.
지난 4월 조기총선에서 리쿠드당과 청백당은 나란히 35석씩 기록했지만 우파 진영이 중도 진영에 신승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됐었다. 하지만 리베르만이 네타냐후 연립내각의 참여를 거부하면서 연정 협상이 결렬됐다. 리베르만은 초정통파 신자가 유대학교 재학 시 병역을 면제해주는 법률을 위헌이라고 지적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초정통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개월 만에 다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도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동맹은 과반수에 못 미쳤다. 이에 따라 5선을 노리는 보수 강경파 지도자 네타냐후 총리의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리베르만은 “리쿠드당과 청백당을 아우르는 대연정”을 요구하고 있고, 간츠는 리쿠드당과도 연정 협상을 할 수 있지만 부패 혐의를 받는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야만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수수, 배임 및 사기 등 비리 혐의로 검찰의 기소를 앞두고 있어서 실각하면 바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아랍계 정당은 유대계 정당들의 반대로 연정에서 배제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 존재감을 키운 공동명부는 팔레스타인이나 아랍에 대해 강경 발언을 피해온 간츠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연정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병합하겠다고 밝히는 등 보수파 결집에 사활을 걸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아랍 국가와의 공존보다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유대 민족주의’를 내세워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1996~1999년, 2009~2019년)가 됐다. 하지만 그의 대아랍 강경 발언은 오히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냈다. 만약 간츠가 총리가 되고 공동명부가 연정에 참여하면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은 네타냐후 총리 시절과 비교해 상당히 온건해질 가능성이 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